22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끝내 호명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한국영화로는 2012년 이후 4년 만에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반면 이란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세일즈맨’이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필리핀 영화 ‘마 로사’에 출연한 재클린 호세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다른 아시아 영화들은 선전했다.
이로써 한국영화는 2012년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후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에서 연이어 상을 받지 못했다. 그 사이 국내 영화 시장은 연평균 관객 2억 명을 넘으며 성장했지만 ‘엘리트 영화’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영화는 2000년대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2002년 칸에서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4년 김기덕(베를린 감독상), 2004년 박찬욱 감독(칸 심사위원대상)의 수상으로 절정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2010년대에 접어들며 수상 소식은 뜸해졌다.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감독도 박찬욱 김기덕 이창동 홍상수 등 매번 같은 인물이었다. 이에 따라 ‘포스트 박찬욱 김기덕’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주목을 끌었던 한국영화의 신선함이 바랬다고 진단한다. 황철민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는 “자극적 이미지와 소재로 눈길을 끌던 한국영화가 이제 유럽인에게 생경하지 않다”며 “수준 높은 한국적 담론을 담은 한국영화로의 진화가 필요한 때”라고 했다.
한국영화계가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상업영화에만 매달려 예술영화 육성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재형 영화평론가협회장(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은 “예술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살리지 않으면 상업적으로도 지속성을 갖기 어려운 게 영화산업의 속성”이라며 “영화제 수상이 국가 브랜드와 문화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므로 당국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젊은 영화인들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칸영화제에 참석한 김영우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나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등 자기 세계를 구축한 젊은 감독들이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운영이 보수적인 칸영화제의 성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한 영화계 인사는 “칸영화제는 그들이 발굴한 감독에게 후하다”고 했다. 실제 올해에는 칸영화제를 통해 명성을 얻은 캐나다 그자비에 돌란 감독의 ‘가장 세상의 끝’이 평단의 부정적 평가에도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한편 최우수작품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은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이 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에 돌아갔다. 3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상은 영국 여성 감독 앤드리아 아널드의 ‘아메리칸 허니’가 수상했다. 감독상은 ‘퍼스널 쇼퍼’를 연출한 프랑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과 ‘바칼로레아’를 연출한 루마니아 크리스티안 문지우 감독이 공동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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