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한상준]부산영화제, 관객 입장에서 시스템 고쳐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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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준 전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
한상준 전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가 위기에 직면했다. 이번 위기는 부산시와 영화제 집행위 사이의 갈등에서 발단됐지만, 그 본질은 ‘부산영화제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부산영화제에서 2년간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필자의 눈에, 이번 위기는 성공의 외피 속에 감춰져 있던 곪은 부위가 마침내 터진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와 집행위의 갈등은 2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임기 만료 직전 68명의 자문위원을 새로 위촉하면서 악화됐다.

부산시는 이 위원장이 위촉한 자문위원 68명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부산지법은 최근 부산시 손을 들어줬다. 부산시는 또 이 위원장과 전현직 사무국장을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부산영화제가 지난 20년간 몇몇 인물 중심의 ‘동아리 조직’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데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숨어 있다. 동아리 조직은 끈끈한 유대감으로 신속하게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통해 부산영화제가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영화제로 성장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제 규모가 커지면 조직의 성격과 운영 방식, 구성원의 의식도 달라져야 한다. 1996년 22억 원으로 시작한 영화제 예산 규모는 2015년엔 120억 원으로 늘었지만, 집행위 구성원들의 폐쇄적 마인드는 변하지 않았다. 영화마켓과 영화연구소 등 하위 조직을 의욕적으로 만들어 외형을 확대했지만 과연 제 기능을 발휘했는지는 의문이다. 그사이 영화제 상근 인원은 40여 명까지 늘어나 인건비를 포함해 운영비가 32억 원에 달한다. 상근 인원이 칸이나 베이징 영화제보다 많다.

게다가 창립멤버 중심의 특정 인맥이 집행위를 차지하면서 영화제는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됐다. 이들은 외부의 비판에 배타적 태도를 보이고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이슈에서 한쪽 편에만 섰다. 그런 가운데 총예산의 절반을 지원하는 부산시를 향해서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라”는 원론적 요구만 거듭할 뿐이다.

영화제의 주인은 부산시도, 소수의 영화인들도 아니다. 영화관을 직접 찾는 많은 관객들이 영화제의 진짜 주인이다. 집행위 측은 부산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을 요구하지만, 독립성과 자율성은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관객을 위한 것이지 특정 인맥의 ‘밥그릇’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소수의 손에서 관객에게로, 주먹구구식 운영에서 합리적 운영으로 변화해야 할 때가 왔다.

한상준 전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부국제#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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