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男기자가 본 ‘국제시장’, “진짜 재미있는데 이게 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1일 16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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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국제시장' 시사회 날. 극장을 나서며 울컥한 맘 추스르는데 연신 전화벨이 울렸다. 평소에도 감상평을 묻는 이들이야 있었지만, 경쟁사들까지 이리 무더기로 묻는 건 처음. 헌데 옆 여기자 휴대전화는 감감무소식. 이유를 물어봤더니 깔깔 웃는다.

"딱, 40대 남성이시잖아요!"

17일 개봉하는 '국제시장'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봐달라고 대놓고 소리치는 영화다. 이는 극장 찾는데 가장 인색한 관객도 끌 수 있단 자신감의 발로이며, '천만 영화'를 노린 포석이다. 벌써부터 입소문이 심상치 않은 '국제시장'은 천만클럽에 입성할 수 있을까.

●Yes, 더할 나위 없다

1950년 흥남부두에서 피난 배에 오른 덕수(황정민)네 가족. 아버지(정진영)와 헤어졌지만 부산 남포동 국제시장에 먼저 터 잡은 고모(라미란)의 도움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남동생 승규(이현)가 서울대에 합격해 목돈이 필요해지자 덕수는 X알친구 달구(오달수)와 독일로 광부 일을 하러 떠난다. 그곳에서 간호사로 파견 나온 영자(김윤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잠깐 스토리만 들어봐도 찌릿 감이 온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게 아니었던 것이 아니었다"라는 변사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일흔이 넘은 덕수의 회상 속에 그려지는 그의 젊은 시절은 한국 현대사와 맞닿아있다. 6·25전쟁부터 1960~70년대 파독광부와 월남파병,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까지…. 누구나 '붓 잡으면 책 열권은 쓴다'던 애절한 시대가 켜켜이 쌓이며 목을 메인다.

2009년 영화 '해운대'로 이미 천만클럽(1145만 명)에 가입한 윤제균 감독은 식상할 법 했던 이야기 가닥을 쫄깃하게 비벼냈다. 덕수와 영자가 실제 양친 존함임을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던 윤 감독이 온 힘을 들이부은 기운이 불끈불끈 느껴진다.

황정민은 극에 활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젊은 20대부터 스웨덴 특수 분장팀까지 동원해 만들었단 70대 노인까지 '잔 근육까지도' 자연스러웠다. 오달수 역시 모처럼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했고, '월드스타' 김윤진은 사투리는 어색했으나 제몫을 했다.

● No, 이건 아쉽네

매끈하게 잘 빠진 건 부인하기 힘들다. 제작비(180억 원)만큼 흥행 스코어도 엔간히 올릴 터. 하지만 모두가 만족할 영화인지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한국 현대사를 다루면서 '정치'는 빠뜨렸다.

영화 초반에 나비가 펄럭이며 시장 전경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국제시장은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1994년)가 되겠노라 선언한다. 하지만 약점까지도 닮았다는 게 문제. 검프만큼 역사를 뒤죽박죽 희화화하진 않았지만, 동전의 한쪽 면만 바라보는 순진한 시각은 아쉽다. 월남전 당시 한국이 베트남을 돕는 입장처럼 묘사하는 대목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는 감독의 선택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반대편만 부각하는 작품도 즐비한 판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홍보글귀처럼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라기엔 왠지 '우리들만의' 이야기에 갇혀버린 건 아닌지. "진짜 재밌다"고 강추는 하는데, "훌륭하다"기엔 머뭇거려지는 이유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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