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함을 보았다… 모방범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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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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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악마를 보았다’ 관객들의 감상평

“빈약한 스토리 난도질로 덮어”
관객 대부분 불쾌-부정적 반응
제작진 “표현수위 판단, 관객몫”

사진 제공 쇼박스
사진 제공 쇼박스
《“보기 불편했죠?” 개봉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악마를 보았다’(18세 이상 관람가) 시사회장 출구에서 마주친 영화사 직원이 건넨 질문이다. “아기를 가졌어요. 살려주세요. 제발….” 울먹이는 여인을 껄껄 웃으며 난도질하는 살인마의 얼굴. 곧이어 동강 난 허리와 목 잘린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첫 시퀀스부터 러닝타임 2시간 24분 내내, 몹시 불편했다.》이 영화는 연쇄살인마 장경철(최민식)과 국가정보원 요원 김수현(이병헌)의 대결을 그렸다. 연인을 잃은 김수현은 “그녀가 당한 만큼 갚아주겠다”며 장경철을 쫓아 ‘붙잡고 괴롭히다 놓아주기’를 반복한다. 싸움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두 주인공이 휘두르는 폭력의 강도도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진다. 시각보다 청각적 자극이 세다. 회칼로 사람 몸을 푹푹 찌르는 소리, 잘린 목이 데구루루 바닥을 구르는 소리, 아킬레스힘줄을 칼로 뚝 잘라내는 소리가 쉼 없이 이어진다.

기자간담회에서 제작사 페퍼민트앤컴퍼니의 김현우 대표는 “제작을 고민할 무렵 임신 한 아내가 ‘잔혹한 범죄에 대해 영화를 통해서 복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김지운 감독은 “니체는 저서 ‘선악을 넘어서’에 ‘괴물과 싸울 때는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하라’고 썼다”며 “그와 비슷한 생각을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식인(食人)과 난도질 등을 묘사한 장면 때문에 개봉 전 두 차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데 대해서는 “1분 30초 정도 잘라냈다. 기존 영화에 이미 나왔던 수위인데 왜 문제가 됐는지 모르겠다. 논란에 대한 판단은 관객에게 맡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팀은 13∼15일 서울과 경기 일원 15개 극장을 찾아가 ‘악마를 보았다’를 보고 나온 관객 236명에게 출구조사 형식으로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난도질 살인과 강간 등의 묘사 장면에 대한 느낌. 둘째, 이 영화를 가족이나 친구에게 추천할지 여부. 그리고 셋째로 토막살인, 참수(斬首) 등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꼭 필요했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메가박스에서 설문에 응하고 있는 관객들.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메가박스에서 설문에 응하고 있는 관객들.
잔인한 묘사 장면에 대해서는 “불쾌했다. 역겹다. 욕 나온다. 선정적이다” 등 부정적 반응이 77%(182명)로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긍정적 응답(18%, 42명)을 압도했다. 윤지원 씨(20·연세대)는 “복수 과정의 자극적 묘사에만 치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추천 여부에 대해서도 63%(150명)가 “권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추천하겠다”는 응답은 34%(80명)였다. 손민홍 씨(28)는 “현실의 범죄에 대한 대리복수를 노렸다는 제작자의 설명을 수긍하기 어렵다”며 “복수에 나선 수현은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 잔인한 묘사만 강조해 오히려 범죄를 부추기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회사원 이용희 씨(52)도 “요즘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알려주려는 건지…. 자극적 표현의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토막살해 강간 등의 적나라한 묘사가 필요했느냐는 질문에는 ‘필요했다’가 50%(119명), ‘필요하지 않았다’가 47%(110명)로 찬반이 비슷했다. 필요한 이유 중에는 “폭력적 장면을 빼면 영화에서 볼 게 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김 감독은 “등급 논란을 겪으며 영화 작업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며칠 동안 고민할 만큼 힘들었다. 필요한 ‘와사비’를 너무 많이 덜어내 밋밋해진 요리처럼 ‘지루한 복수 이야기’가 되면 어쩌나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원 최정훈 씨(29)는 “부실한 스토리, 헐거운 시나리오를 표현 과잉으로 눈가림하려는 것 같았다”며 “영화 중반 느닷없이 끼어든 섹스 장면을 보다가 어이가 없어졌다. 김 감독의 전작을 모두 본 팬인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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