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Q|‘바보’ 김현철의 재발견] “영수 합쳐서 15…점, 그…그래도 세계사는 짱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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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일 07시 00분


요즘 뜨고 있는, 말 더듬는 개그맨 김현철씨에게 학창시절 성적을 물어봤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김현철(가운데)은 마치 이웃집 오빠처럼 꾸밈없는 모습으로 기자들을 맞았다. 이해리 기자(오른쪽)와 김민정
기자가 김현철의 뒤에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사랑의 총’을 따라했다.
요즘 뜨고 있는, 말 더듬는 개그맨 김현철씨에게 학창시절 성적을 물어봤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김현철(가운데)은 마치 이웃집 오빠처럼 꾸밈없는 모습으로 기자들을 맞았다. 이해리 기자(오른쪽)와 김민정 기자가 김현철의 뒤에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사랑의 총’을 따라했다.
■ 여기자들의 수다- 인생역전 개그맨 김현철 성공스토리

알아주는 이 없어도 ‘바보 개그’ 16년 외길…
‘세바퀴’·‘일밤’ MC로 활짝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

‘PD공책’ 아이디어 스트레스
에디슨 시대만 태어나도 ‘빵’ 터졌을텐데…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김현철의 손이 바빠졌다. 약속 장소인 카페의 문을 열어주고, 자리를 안내하고, 차를 대접하고 “밥은 먹었냐”며 분주하게 기자들을 챙긴다. 매니저에게 부탁할 법도 한데 그는 ‘동네 오빠’처럼 친근하고 꾸밈없는 모습으로 기자들을 맞았다.

데뷔 한지 16년. 알아봐주는 이 없고, 웃어주는 이 없어도 느림보같이 16년을 꿋꿋하게 걸어왔다. 그리고 떴다. MBC ‘세바퀴’ PD공책의 ‘∼에게 물어봤습니다’는 인기 유행어가 됐고 그를 찾는 곳도 많아지면서 ‘일밤’의 ‘단비’, ‘거성쇼’ 고정 진행자로 발탁됐다. 전성기를 축하한다는 말에 그는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라며 겸연쩍어 했다.

총성없는 전쟁터 같은 예능에서 16년 동안 버티면서 마침내 전성기를 맞은 김현철의 느림보 스토리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이해리 기자(이하 이 기자) : 스케줄이 여느 톱스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많다. ‘단비’ 일정은 마치 세계일주를 방불케 한다.
김현철 : 그동안 아프리카, 스리랑카,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2월 21일 ‘단비’ 팀과 함께 필리핀으로 갔다가 3월 3일 아이티로 들어간다. 스케줄이 많기 보다는 힘든 일정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김민정 기자(이하 김 기자) : 몸은 힘들어도 고정 진행자여서 각오가 남달랐을 것 같다.
김현철 : 처음에는 고정 프로가 하나 더 생겼다는 사실이 좋았다. MBC의 간판 프로그램 ‘일밤’이고 고정이었기 때문에 불구덩이도 뛰어들 각오였다. 하지만 현장은 달랐다. ‘단비’가 찾아간 나라들은 상상 이상으로 환경이 열악했고 감동과 웃음을 함께 줘야 하는 출연자의 입장에서 고민이 많았다.

이 기자 : 방문한 나라 중 촬영이 가장 힘들었던 곳이 어디였나.
김현철 : 캄보디아는 고온다습한 나라라 촬영 내내 축 처지고 음습한 기분마저 들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악취였다. 방송에서 악취까지는 표현되지 않는다. 화장실이 없어 주민들이 마을 곳곳에 대소변을 보고, 그 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이러다가는 웃음을 주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기자 : 그런 악조건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계기가 있었나.
김현철 : 촬영 스태프들을 보면서 내가 너무 나약한 마음을 먹었구나 생각했다. 야간에 촬영을 하는데 조명 감독이 조명을 비추자 모기떼들이 달려들었다. 영화 ‘미이라’를 연상케 할 정도로 엄청난 모기떼였다. 모기들은 순식간에 조명을 삼켰고 카메라 감독들까지 덮쳐 촬영 자체가 힘든 순간이었다. 그 와중에도 그들은 출연진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모기에 물리는 것을 참아가며 카메라를 잡았다. ‘단비’를 촬영하면서 우물을 파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그 날 만은 스태프들의 노력에 눈물을 흘렸다. 황정민이 예전에 시상식에서 한 ‘밥상 이야기’를 그 때 공감했다.

이 기자 : ‘단비’ 촬영으로 ‘세바퀴’에 소홀한 적은 없었나.
김현철 : 아무래도 예전에 비해 녹화가 잘 안된다. ‘세바퀴’는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 준 디딤돌인데 ‘PD공책’ 아이디어도 점점 고갈되고 있어 창작의 고통을 매일 겪고 있다. 에디슨 시대에만 내가 태어났어도 새롭게 발명할 것이 많았을 텐데 요즘은 창작할 게 없다. 나도 마감에 시달리는 기자들처럼 녹화 전날 간신히 PD공책 대본을 마감한다.

김 기자 : ‘PD공책’에 등장하는 역사 속 사건과 연도는 본인이 기억하는 것인가. 상당한 양의 지식이 필요할 것 같다.
김현철 : 학창시절 영어와 수학에는 소질이 없었다. 학력고사를 볼 때 영어 수학 합쳐서 15점이었다. 하지만 국사, 세계사와 같은 과목에는 강했다. 요즘에는 해외 촬영이 많다보니 비행기 안에서 상식 백과나 역사 미스터리가 담긴 책을 읽는다.

(김현철은 갑자기 역사의 사건 연도를 물어보면 무엇이든 대답해 주겠다며 자신감을 보였고 실제로 갑오개혁, 을미사변 등의 연도를 정확하게 답해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이 기자:전성기와 함께 생활도 많이 달라졌나.
김현철 : 나는 지금을 전성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능이 한 주 단위로 방송되는 점을 감안하면 16년 동안 한 주도 쉰 적이 없다. 나처럼 복이 많은 사람도 드물다. 예전에는 ‘TV특종’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등 아침 프로그램이나 시청률이 많이 나오지 않는 프로그램에도 많이 출연했다. 오히려 지금이 방송 출연 횟수가 줄어든 편이다.

김 기자 : 지난해 연예대상에서 우수상을 놓쳤다. 올해는 기대해도 좋을까.
김현철 : 사실 지난해에 상을 받을 줄 알고 한껏 멋을 부리고 나갔다. 주변에서도 ‘올해는 받겠지’라며 한껏 비행기를 태웠다. 나는 유난히 상복이 없다. 2003년 PD들이 뽑은 스타상을 받은 이후 신인상은 물론 우수상도 받은 적이 없다. 올해는 지난해처럼 난동만 부리는 것이 아니라 시상식장에서 상 받고 활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현철은 누구?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하고 1994년 SBS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했다. 이후 1996년 MBC 공채 코미디언에 합격했다. MBC ‘TV 특종 놀라운세상’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코미디 하우스’ 등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조 진행자로 활약했다. 2003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는 PD들이 뽑은 스타상을 수상했고, 현재 ‘세바퀴’와 ‘일요일 일요일 밤에’ SBSE!TV ‘거성쇼’의 고정 진행자로 발탁되며 전성기를 맞았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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