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김현진] 스타일 인 셀럽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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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4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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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스타일 그리고 미용실…2010 대한민국 스타 헤어 백서

'사자머리'를 한 1990년대의 미스코리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마스카라가 번져 판다처럼 변한 눈가를 연신 훔치면서….
"감사합니다. 제게 기회와 용기를 주신 ○○미용실, ○○○원장님."

촌스럽게 여겨져 잠시 자취를 감췄던 이런 수상 소감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난데없이 연말 연기·연예·가요대상 시상식장에서 재연됐다. 물론 좀 더 세련된 어투를 입고서….
"늘 저를 예쁘게 꾸며주느라 고생하시는 ○○헤어숍 ○○(지)점 식구들, 감사합니다."
SBS 새 수목드라마 \'산부인과\'에서 장서희는 앞머리와 뒷머리를 모두 짧게 자른 일명 \'아톰 머리\'를 선보였다. 지적인 드라마 속 캐릭터와 중성적인 헤어 트렌드를 모두 반영한 스타일이다. 사진제공 SBS.
SBS 새 수목드라마 \'산부인과\'에서 장서희는 앞머리와 뒷머리를 모두 짧게 자른 일명 \'아톰 머리\'를 선보였다. 지적인 드라마 속 캐릭터와 중성적인 헤어 트렌드를 모두 반영한 스타일이다. 사진제공 SBS.

▶ 유행 스타일을 만드는 파트너

대중 앞에 서는 일이 익숙한 연예인들마저 올라만 가면 머리 속이 하얗게 된다는 시상식 무대에서 이들이 소속사 대표, 매니저, PD, 동료 연기자들과 더불어 본능적으로 떠올리는 이들이 바로 헤어숍 '관계자'들이다.

특히 연예인과 헤어 디자이너와의 관계는 단순한 친분을 넘어, 대한민국의 유행을 함께 빚어가는 일종의 파트너다. 보여지는 모든 '비주얼'적 요소 하나하나가 중요한 종합예술시대의 연예인들은 그들의 가치를 돋보이게 해 줄 전문가의 손을 찾는다.

'이희 헤어&메이크업'의 이희 원장은 SBS 새 미니시리즈 '산부인과'의 주인공, 장서희의 헤어스타일을 맡았다. 앞머리도 뒷머리도 짧게 연출한 장서희의 숏 커트는 이미 '아톰머리'란 애칭으로 불리며 유행을 예견하고 있다.

이 원장은 "시놉시스와 대본을 보니 머리 길이가 짧을수록 돋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한 번도 이 정도로 짧은 커트를 해 본 적이 없어 부담스러워하던 장서희 씨도 역할을 위해 과감한 변신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가수 박지윤이 '성인식'으로 활동하던 시절 연출한 섹시한 커트 디자인도 맡았다. 두 스타일 모두 숏 커트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가수와 연기자의 헤어스타일 컨셉트를 잡는 과정은 차이가 크다고 그는 설명했다.

"연기자는 배역에 맞는 스타일을 찾는 것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그래서 감독, 패션 스타일리스트, 헤어 디자이너, 배우가 모여 '4자 대담'을 하기도 하지요. 가수 역시 음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무대를 압도할 만한 임팩트와 카리스마를 내는 방법부터 살피게 되지요."(이 원장)

연기자는 배역에 따라 트렌드에 역행하는 머리 스타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수들의 머리 디자인에는 최신 트렌드가 반영된다. '에비뉴준오' 유로 부원장은 "레이디 가가가 무대 위에서 선보인 커다란 리본 스타일의 헤어 디자인은 여러 국내 아이돌 가수들도 똑같이 재연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 무대에 섰던 '신상'이 거의 실시간으로 국내 스타의 몸에도 입혀져 '글로벌 트렌드'를 이루는 것과 달리 헤어스타일의 경우 '로컬 트렌드'가 더 중시됐던 것이 사실이다. '순수'의 아름 디자이너는 "해외 패션쇼에서 등장한 아방가르드한 헤어스타일은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시도하기엔 무리가 있는 만큼 한국인 정서와 얼굴형에 맞게 최대한 변형해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해외 트렌드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글로벌 스타일'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 헤어숍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희 헤어&메이크업'의 귀정 헤어디자이너는 "올슨 자매, 빅토리아 베컴, 크리스틴 던스트 등 옷 잘 입는 패셔니스타들의 헤어스타일을 주로 참조한다"고 말했다. 그가 꼽는 우리나라 연예인 헤어스타일의 '흥행 공식'에도 '작품(드라마 또는 노래)의 인기가 많을 것'과 더불어 '연예인의 평소 이미지가 스타일리시할 것'이 포함된다.
노래 '성인식'을 통해 청순에서 섹시로 180도 변신했던 박지윤. 커트 머리를 통해 변신을 꾀한 것은 장서희와 같지만 가수와 연기자의 헤어스타일 컨셉트 회의 과정은 사뭇 다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노래 '성인식'을 통해 청순에서 섹시로 180도 변신했던 박지윤. 커트 머리를 통해 변신을 꾀한 것은 장서희와 같지만 가수와 연기자의 헤어스타일 컨셉트 회의 과정은 사뭇 다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 스타들의 변신으로 본 이번 시즌 트렌드

배역과 어울리는지 여부가 우선순위지만, 현대물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헤어스타일에는 어느 정도 해당 시즌의 트렌드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이번 시즌 트렌드 키워드는 '중성적, 그리고 소녀적 매력'. 올 봄 여름 패션 트렌드를 관통하는 실용주의, 로맨티시즘의 영향도 크다. 반면 지난해 연말까지 인기를 끈 이른바 '김남주 물결펌'류의 여성스러운 스타일은 주춤해졌다.

이희 원장은 "1980년대 피비 케이츠를 연상케 하는 긴 앞머리 '롱 뱅'과 어깨 길이 단발머리가 가장 큰 트렌드"라며 "모발의 안과 밖의 길이를 달리하는 '더블 블라인드 커트'로 연출하기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다면적, 실용적 디자인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롱 뱅'과 단발머리는 드라마 '공부의 신'의 배두나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또 앞머리로 이마를 완전히 가리는 뱅 스타일은 길이에 상관없이 다양하게 유행할 전망. 드라마 '파스타' 속 공효진도 귀엽고 엉뚱한 캐릭터에 맞게 다소 짧게 자른 앞머리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MBC '내조의 여왕'을 통해 '물결 펌'을 유행시킨 김남주. 1920-30년대 할리우드 여배우들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이 퍼머처럼 헤어스타일 트렌드도 세월따라 돌고돈다. 사진제공 연합.
지난해 MBC '내조의 여왕'을 통해 '물결 펌'을 유행시킨 김남주. 1920-30년대 할리우드 여배우들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이 퍼머처럼 헤어스타일 트렌드도 세월따라 돌고돈다. 사진제공 연합.

▶ 헤어는 곧 재산… 연예인들의 특별한 헤어 사랑

일반인들이 연예인의 헤어와 관련해 궁금해 하는 점 가운데 화면 너머로 봐도 반짝 반짝 윤이 나는 특별한 머릿결도 포함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머릿결마저도 특별한 걸까' 한탄하게 되지만 사실 타고난 DNA를 자랑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것 모두 '관리의 산물'이다.

몸이 곧 재산인 연예인들은 몸매나 피부 관리 못지않게 머릿결과 두피 관리에도 특별히 신경을 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특수 관리를 받는 등 일반인의 5배 이상 비용과 시간을투자한다. 유로 부원장은 "드라이를 자주 하고 강한 조명을 받다보니 특별 관리를 하지 않으면 머릿결이 금세 손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후천적 관리'로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 성형외과적 시술을 받기도 한다. 여성 연예인의 경우 머리를 '올백'스타일로 올렸을 때 얼굴이 완벽한 계란형으로 보일 수 있도록 헤어라인을 동그랗게 다듬는 '앞머리 라인 성형술'을 주로 한다.

일명 '원숭이 머리'라 불리는 M자형 머리를 가졌거나 이마가 지나치게 넓거나 반대로 좁은 경우 자주 택하는 시술이다. 그랜드성형외과 유상욱 원장은 "목 바로 위, 머리 아랫부분의 피부 조직을 머리카락과 함께 떼어낸 뒤 앞머리 부분에 다시 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머리 라인 성형술'은 보통 이마 성형과 병행한다. 이마 부분에 실리콘 보형물을 넣거나 지방을 삽입하는데, 도톰하고 볼록해진 이마 덕분에 얼굴이 어리고 입체적으로 보이게 된다는 것. 강한 조명을 받았을 때 이마 부분에서 '남다른 광채'가 난다면 실리콘을 삽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유 원장은 설명했다.
앞머리를 이마가 다 내리도록 내리는 뱅 스타일은 올 봄,여름까지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MBC '파스타'의 공효진.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앞머리를 이마가 다 내리도록 내리는 뱅 스타일은 올 봄,여름까지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MBC '파스타'의 공효진.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 스타일은 영원하다

스타들은 헤어스타일 유지비용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 걸까.

숍에서 메이크업과 드라이를 받는 경우 5만원 안팎을 낸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 퍼머 등의 시술을 받을 때도 50% 이상 할인을 받는다. 따라서 회당 관리 비용은 생각보다 적게 들지만, 이들이 거의 매일 미용실을 찾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누적 금액은 상당하다.

한 헤어숍 홍보담당자는 "예전에는 연예인과 헤어숍 원장의 친분으로 가격이나 무료 협찬 여부가 특별한 기준 없이 결정됐지만 대형 매니지먼트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2000년대 이후에는 비즈니스적인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톱스타 한명을 보내는 대신 같은 소속사 신인 몇 명은 무료 협찬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또 평소에는 무료로 하는 대신 광고 촬영 때는 광고대행사와 저희 헤어숍을 연결해 촬영비를 벌 수 있게 해주기도 하죠."
KBS2 '공부의 신'의 배두나 헤어스타일에는은 '롱 뱅', 단발머리 등 이번 시즌 트렌드가 담겨있다. 단정한 '선생님 머리'처럼 보이지만, 연출하기에 따라 섹시하게도 터프하게도 변형할 수 있다. 사진제공 KBS.
KBS2 '공부의 신'의 배두나 헤어스타일에는은 '롱 뱅', 단발머리 등 이번 시즌 트렌드가 담겨있다. 단정한 '선생님 머리'처럼 보이지만, 연출하기에 따라 섹시하게도 터프하게도 변형할 수 있다. 사진제공 KBS.

매니지먼트사도 좌지우지 할 수 없는 '톱 A급' 스타들은 이런 거래에서 열외다. 이들은 회사가 지정한 '협찬 헤어숍' 대신 자신의 마음에 드는 곳을 기꺼이 돈을 지불해가며 다닌다.

멤버 수 자체도 많고 백댄서도 많은 아이돌 그룹의 경우 일부 협찬을 받더라도 관리 비용이 어마어마해질 수밖에 없다. 새벽, 야간 촬영 등이 적지 않아 기존의 헤어숍에만 의지하기도 역부족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매니지먼트사가 직접 투자하거나 연예인들이 투자에 참여해 문을 여는 헤어숍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추세다.

연예인과 헤어숍의 '동반자적 밀착 관계'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90년대 중반쯤 숍을 연, 이희, 이경민, 김청경 등 이른바 '2세대 원장'들이 주도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들은 대개 프리랜서로 연예인들의 광고 및 방송 헤어, 메이크업을 담당했던 인연으로 특정 연예인들을 단골손님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2세대'들의 숍에서 실력도 인맥도 쌓은 '3세대 디자이너'들까지 가세하면서 연예인과 헤어숍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졌다. 하지만 현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장 큰 특성은 '변덕'. 오늘은 가족처럼 따르던 스타들이 언제 등을 돌려 더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는 숍으로 근거지를 옮길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인기가 떨어진 스타는 별이 지듯 사라지나 디자이너의 손끝에서 빚어진 헤어스타일은 패션처럼 시대를 돌고 돌아 '고전(classic)'이 된다. 그레타 가르보가 1930년대 선보였던 '쫀득쫀득'한 클래식 퍼머가 2009년 한국에서 '물결 펌'으로 재현됐듯….

'스타는 져도 스타일은 영원하다'는 절대 명제는 헤어 디자이너에게는 그래서 위안이자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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