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의 영화가 좋다] 시퍼런 세월속에 핀 ‘데블스’

  • 입력 2008년 10월 30일 08시 34분


아나운서라서 좋겠단 말을 자주 듣습니다. 아마 화면 속 단정하고 지적(?)으로 보이는 모습 덕분이겠죠. 현실 속의 저는 여전히 허술하고 덜렁댑니다만.

직장 생활도 4년째에 접어들며 어색하기만 했던 아나운서라는 옷이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방송 말고도 하고픈 것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합니다. 꽃꽂이로 친구에게 부케를 선물할 실력도 갖췄습니다. 화요일마다 일본어를 공부하고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함께 달리고 싶어 빨간색 자전거도 장만했습니다.

아예 직업을 바꾼다면? 가수도 재밌겠네요. 노래방에서야 백점이 빵빵 터지긴 하지만 무대에 설 목소리는 아닙니다. 끼도 없고요.

그래도 다시 태어난다면, 가수를 해보고 싶어요. ‘영화가 좋다’의 MC였던 성시경씨의 입대 전 마지막 콘서트를 본 이후 그런 소망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날 아쉬운 팬들의 마음처럼 주룩주룩 비가 왔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어요. 비가 와 그냥 갈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공연장을 꽉 채운 사람들이 비를 맞고 촛불을 든 채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충격이었습니다.

영화 ‘고고 70’은 그런 ‘가수’에 대한 이야깁니다. 열기 가득한 콘서트를 직접 본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영화를 보는 내내 그룹 ‘데블스’와 함께 했습니다. 70년대 시퍼런 전경들의 압박 속에서도 음악에 미쳐 노래를 부르고 환호하는 모습은, 사막 속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았습니다.

노래, 음악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열광하고, 미치게 하는 걸까요? 우리는 한 번 뿐인 인생에서 그처럼 무언가에 미쳐 산 적이 있을까요? 아! 정말 음악에 미친 가수가 되고 싶어요. 저주받은 절대 음감만 아니라면! 하하. 아나운서란 직업, 정말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하지만 ‘온 에어’라는 말 그대로 방송이란 ‘공기 중에 흩어져 버리는 것인가’ 할 때도 있답니다.

가수란 직업은 어떤가요. 감동적인 것도 그렇지만, 음반이 남는다는 게 부럽습니다. 아나운서로서 난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요? 10년, 20년 뒤에라도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성시경씨의 콘서트처럼 ‘고고 70’도 제 인생에 화두를 던졌습니다. 그저 음악이 좋아, 놀고 싶어, 음악에 미쳤던 ‘데블스’처럼 저도 뭔가에 미쳐보고 싶고, 그 미침이 감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제가 욕심이 과했나요? 이런 저런 공상에 흐트러진 마음부터 챙기고 방송에나 집중하라는 선배들의 불호령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음반은 남길 수 없어도 몇 분짜리 라디오 뉴스에라도 미쳐, 한 사람에게라도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야겠습니다. 그 때까지 가수의 꿈, 일단 접어두겠습니다.

ps. 신민아씨 얘기를 빼놓았네요. 제가 본 중 신민아씨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습니다. 아기 같은 얼굴에 그런 섹시함이 숨어있었다니! 특히 쭉쭉 뻗은 몸매. 연기력도 연기력이었지만, 저의 운동 본능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런, 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생겨버렸군요.

조수빈

‘영화가 좋다’와 ‘뉴스타임’을 진행 중인 꿈많은 KBS 아나운서. 영화 프로 진행을 맡은 뒤 열심히 영화를 보며 삶을 돌아보는 게 너무 좋아 끄적이기 시작함. 영화 음악 프로나 영화 관련 일도 해보고 싶은 욕심쟁이, 우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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