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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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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일본 이오시마(硫黃島)에 미군 해병이 상륙해 전투 중 수라바치 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는 순간이 AP통신의 사진기자 조 로젠탈 씨에게 포착된다. 전투는 그 이후로도 35일간 계속됐지만 그 사진을 본 미국 국민은 승리의 희망을 갖게 된다. 깃발을 꽂은 해병 6명 중 살아 돌아온 위생병 존 닥 브래들리(라이언 필립) 등 3명은 영웅이 되어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전쟁 기금 마련을 위한 홍보에 이용된다. 그러나 평생 섬에서의 기억을 떨치지 못한다.
배우로서 서부극의 영웅이었던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 ‘아버지의 깃발’(15일 개봉)을 통해 거꾸로 전쟁과 영웅의 허상에 대해 폭로한다.
누가 영웅이 되기를 원했는가. 갑자기 영웅이 된 주인공 중 한 명은 “우리를 영웅으로 만드는 건 사기”라고 외친다. 그 순간의 영광을 재현한다며 야구장에 모형 산을 만들어 놓고 깃발을 꽂는 ‘쇼’까지 벌이는 와중에도 그들의 머릿속은 전쟁 당시를 맴돌고 있다.
죽은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고? 천만에, 겨우 20대 초반으로 방금 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그들은 섬에 상륙하자마자 총알받이가 되어 사지가 찢기고 내장이 터져 나온 채 죽어간다.
전우는 절대 버리지 않는다고? 실제 전쟁터엔, 그런 거 없다.
흑백화면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된 전쟁의 참혹함과 이후 주인공들의 상처를 통해 이스트우드 감독은 ‘영웅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필요에 의해 만들었을 뿐’이라고 웅변한다.
현재, 전쟁 후 그들이 영웅으로 환호를 받던 때, 그리고 전쟁 당시의 상황이 계속 뒤섞이면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관객에게 계속 교훈을 주입하는 것도 좀 부담스럽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를 포함해 모두가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전쟁의 본질, 역사와 인간에 대한 이스트우드 감독의 성찰이 느껴진다. 이는 이오시마 전투를 일본인의 시각에서 그린 이 영화의 형제, ‘이오시마에서 온 편지’와 함께 봐야 더 와 닿을 테지만 ‘이오시마…’의 국내 개봉은 아직 미정이다. 15세 이상.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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