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상처받은 남자들, 신경정신과 가다

  • 입력 2005년 10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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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멜로영화에서 ‘상처받는 남자’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무엇에 상처받느냐고? 물론 사랑이다. 남자 주인공들은 사랑한 ‘죄’로 심적인 충격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들은 사랑의 아픔이 가져다준 정신적 외상(外傷)을 정면 돌파하기도, 회피하기도 한다. 아, 상처받은 남자들이여. 이들이 신경정신과를 찾는다면 과연 어떤 진단과 치료를 받을까. 양창순 대인관계연구소의 양창순(신경정신과) 박사의 도움으로 영화 ‘외출’의 인수(배용준), ‘너는 내 운명’의 석중(황정민), ‘형사-Duelist’의 ‘슬픈 눈’(강동원)에 대한 가상 심리상담을 해본다.》

①‘외출’의 인수

외도한 아내에 대해 인수 씨가 느끼는 배신감은 당연해요. 이제 인수 씨의 선택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일 거예요. 첫째, 아내에 대한 복수심을 겉으론 억누르면서 결혼생활을 계속하는 거죠. 무의식적으로 아내를 이리저리 괴롭히는 불행한 결혼이 계속될 거예요. 둘째, 아내와 헤어지는 방법이 있어요. 셋째, 아내와 결혼생활은 지속하되 한번 허심탄회하게 아내와 서로에 대한 불만을 얘기해 보는 거예요.

영화를 보니, 인수 씨는 결국 두 번째 방법을 택하더군요. 분명히 해야 할 게 있어요. 아내와 관계를 맺은 남자의 부인인 서영(손예진) 씨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내에 대한 복수심에선지, 아니면 서영 씨에 대한 사랑 때문인지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겠어요? 복수심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다면 새로운 사랑도 행복하지만은 않을 거예요. 복수심을 지우세요.

▽치료법=인수는 정상적.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돌아보게 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분석 치료’가 효과적이다.

②‘너는 내 운명’의 석중

석중 씨는 그토록 사랑하던 여자 은하(전도연)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환자란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일편단심을 결코 거두지 않죠. 우리는 ‘사랑의 환상’에 빠져 살기도 해요.

‘언제나 나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남자를 찾을 거야’가 여자의 환상이라면, ‘언제까지나 여자를 이해하고 받아 주고 보호해 줄 거야’는 남자의 환상이죠. 석중 씨는 은하 씨와의 사랑이 사실 힘겨우면서도 강렬한 자기 암시에 빠져 있는 건지도 몰라요.

영화를 보면, 은하 씨는 석중 씨의 짐이 되지 않겠다면서 사창가로 숨어들죠. 결국 석중 씨의 마음은 더 아프게 됩니다. 프로이트도 말했지만 타나토스(Thanatos), 즉 자신을 파멸시키고자 하는 무의식적 의지가 은하 씨에겐 있어 보여요.

이런 본능이 강한 사람은 행복을 느끼면 죄책감에 못 이겨 자신을 파괴시키는 쪽으로 저도 모르게 움직이곤 하죠. 은하 씨의 죄책감이 더 커지지 않도록, 상대가 감당할 정도의 사랑을 주는 것이야말로 현실적으로 건강하고 오래가는 사랑 아닐까요.

▽치료법=석중은 강렬한 사랑 때문에 현실감각이 손상된 경우.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생업을 포기해선 안 된다”면서 현실 적응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지지(支持) 치료’가 효과적이다.

③‘형사’의 ‘슬픈 눈’

당신은 늘 무언가를 회피해 왔어요. 아버지나 다름없는 병조판서의 권위에 도전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회피했죠. 당신은 심리적으로 중요한 결심을 해야 하는 순간 피해 버리곤 해요. 그래서 당신의 눈은 슬픈 거죠. 여형사인 남순(하지원)에게 사랑을 느끼면서도 어떤 행동도 자제한 채 “내가 좋아 따라오는 거요”라고만 말하는 것도 일종의 회피심리죠. 남순과의 끈끈한 칼싸움도 사실은 애욕을 칼싸움으로 대체하고 해소하려는 심리가 숨은 거죠. 당신 안에 얼마나 큰 두려움이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지금껏 회피해 왔던 상황을 모두 글로 써보세요. 그리고 가장 쉬운 것부터 해결해 나가면서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하나하나 줄여 나가요.

▽치료법=회피성향의 사람은 여러 구실을 들어 치료 자체를 피하기 때문에 치유가 가장 힘들다. 작은 것이라도 두려움을 이겨내는 행동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의지를 북돋워야 한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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