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아넷 “권력에 굴복하는 언론은 독자가 심판”

  • 입력 2003년 9월 15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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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AP통신과 CNN, NBC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해온 피터 아넷 기자는 “진실은 진실이다(the truth is the truth). 언론은 정치 권력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주기자
1960년대부터 AP통신과 CNN, NBC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해온 피터 아넷 기자는 “진실은 진실이다(the truth is the truth). 언론은 정치 권력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주기자
“정치권력이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언론매체간 자유로운 경쟁이 있어야 수많은 정보 중에서 진실을 가려낼 수 있다. 민주주의 정부는 이런 현상이 국민과 국가를 위해 매우 긍정적이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서방기자로는 최초로 1997년 오사마 빈 라덴을 인터뷰하기도 했던 ‘전설적 종군 기자’ 피터 아넷(66)이 15일 본사를 방문해 언론과 정부의 긴장관계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아넷 기자는 한국언론재단의 초청으로 14일 내한했다.

그는 66년 라오스 쿠데타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91년 걸프전에서 CNN 종군기자로 미국의 바그다드 공습을 현지에서 생중계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 단독 인터뷰와 400명의 사망자를 낸 분유공장 폭파 사건을 보도해 ‘적을 편든다’는 오해와 함께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아넷 기자는 올 3월 이라크에서 미국 NBC의 종군기자로 활약하던 중 이라크 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초기 전략이 실패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인터뷰 하루 뒤 NBC에서 해고됐으며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제작하기로 했던 그의 자전 다큐멘터리 계획도 백지화됐다. 현재 그는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영국 ‘데일리 미러’지에 기고하고 있다.

그는 “보도와 해설에 있어 언제나 사실만 말한다는 원칙에 따라 당시 이라크 TV에서도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라며 “언론은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선 안 되며 그렇게 할 경우 독자나 시청자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넷 기자는 걸프전 때와 달리 이번 이라크전 보도에서는 미국이 세계 언론을 더 이상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아랍계 위성방송 알 자지라의 활약을 예로 들었다.

“특정 국가의 언론이 권력과 결탁해 거짓을 꾸며내는 일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세계 언론들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진실이 결국 밝혀지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이 한국 전투병의 이라크 파병을 요청한 것에 대해 그는 “미국이 자국군의 인명 피해가 늘고 여론이 악화되자 책임 분담 차원에서 여러 나라에 제의한 것”이라며 “미국은 일방주의 노선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전투병을 보내면 사망자가 나올 것이므로 한국인이 이라크 문제를 얼마나 절실히 생각하는가에 따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미국이 절박한 상황인 만큼 한국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넷 기자는 이라크전의 성과에 대해서는 “미국의 군사 목표는 21일 만에 충족됐지만 그것은 ‘바그다드 해방전’에 그쳤을 뿐이다. 후세인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지 못해 지금 같은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회의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을 ‘위기의 호(弧·arc of crisis)’라고 부르며 이 지역의 분쟁은 세계평화와 직결되므로 유엔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58∼75년 AP통신 기자로 동남아를 담당하는 동안 여러 차례 내한했으며 김치도 즐겨 먹는다. 사위가 한국계 미국인.

아넷 기자는 17일 오전 10시 언론재단에서 ‘전쟁보도의 진실과 국가이익’을, 18일 오후 3시 서울대 박물관 강당에서 ‘전쟁보도와 국제저널리스트의 역할’을 주제로 각각 강의한다. 이후 그는 바그다드로 가서 중동문제를 다룬 책을 저술하는 등 저널리즘 활동에 전념할 예정이다.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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