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7시.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엄 공연장에는 리처드의 노래를 듣기 위해 숱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싱가포르가 국제 도시여서 중국 영국 인도 중동에서 왔을법한 1만1000여명의 관객이 입장하자 공연장은 인종 전시장같았다. 34년만에 그를 재회하는 나의 감회도 남달랐다.
‘We Don't Talk Anymore’의 전주에 이어 청록색 재킷을 입은 리처드가 등장하자 관객들은 순식간에 60년대 젊은이로 돌변했다. 40년이 넘은 그의 음악적인 완성도와 저력은 관객들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까맣게 잊어버렸던 젊은 날들을 안겨다 줬다.
‘When The Girl in Your Arms’ ‘Evergreen’ ‘The Young Ones’ ‘Summer Holiday’ ‘Congratulations’ 등 우리가 교가보다 더 열심히 불렀던 히트곡들을 리처드가 부를 때마다 공연장은 합창으로 메아리쳤다. 기사 작위까지 받은 가수가 다른 가수를 거론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을 접고 관객들에게 담담하게 고백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없었으면 오늘날의 나는 없었다.”
이어 프레슬리의 히트곡 ‘Too Much’ ‘Don't Be Cruel’을 메들리로 부르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엘비스의 독특한 제스처와 관능적인 몸놀림을 읽을 수 있었다.
네 옥타브에 다다르는 음역과 무르익을대로 익은 중음의 매력. 그리고 예순을 넘긴 가수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운 고음처리는 노래마다 진한 감동을 더해주었다.
마지막 노래는 ‘Millenium prayer’로 이 SHFOMS 송년가인 ‘올드 랭 사인’의 멜로디에 ‘주기도문’을 가사로 옮긴 곡이다. 리처드가 이 노래 뒤에 ‘전쟁은 사랑의 결핍에서 오며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고 한 인삿말은 인류를 향한 기도였다. 2시간40분의 공연을 함께 본 뒤 10대처럼 손을 잡고 공연장을 나서는 중년 부부들은 이전보다 더 많이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보였다.
허엽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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