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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14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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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형 집행관 행크(빌리 밥 손튼). 3대째 이어지는 가업을 싫어하던 아들이, 그가 보는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한다. 고집과 편견으로 쌓아올린 견고한 세계가 갑자기 무너져 내린다.
영화 ‘몬스터 볼’은 폭력적이고 갑작스러운 세 죽음 이후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다. 멜로 드라마이되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영화는 말을 아끼며 느리게 전개된다. 단순화의 함정을 피해, 말로 잘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캐릭터의 복잡한 결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흑인 여자와 백인 남자의 사랑을 그렸지만, ‘몬스터 볼’은 인종의 벽을 뛰어넘는 사랑의 힘을 예찬하는 ‘사회성’ 영화가 아니다. 행크의 아버지는 극심한 인종차별주의자이며 행크 역시 마찬가지. 아들의 죽음 이후 마음 붙일 곳 없던 행크는 우연히 만난 흑인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가 과거 자신의 시각을 반성하는지 아닌지는 이 영화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생의 절박한 순간에 찾아온 사랑을 통해, 이들은 때론 슬픔도 위로가 된다는 것을 서로에게서 발견한다.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면 ‘신파’로 느껴질 소지가 다분한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두 주인공의 연기력. 특히 할 베리는 거친 성격과 여린 내면이 뒤섞인 레티샤의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행크가 남편의 사형을 집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레티샤가 행크의 옆에 앉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착잡한 표정은 열마디 말보다 훨씬 더 울림이 깊다.
할 베리는 올해 이 영화로 흑인 여배우로서는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탔다. 원제 ‘Monster’s Ball’은 사형수의 마지막 날을 뜻하는 말. 감독 마크 포스터. 18세이상 관람가. 18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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