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거 액션 드라마 아냐?' SBS<여자만세>촬영현장

  • 입력 2000년 10월 17일 13시 47분


"큐 사인 주면 꽃을 어깨 뒤로 높이 던져요. 그때 시라씨 달려들고…, 자, 준비! 큐."

연출자 오세강 PD의 말이 끝나고 스태프들이 긴장한 가운데 카메라가 이동레일 위를 움직이자, 연기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결혼식 장면이다. 신부가 부케를 뒤로 던지면 미리 준비하고 있던 미혼의 여성이 받는 것은 유별날 것도 없는 풍경.

하지만 이날은 조금 달랐다. 뒤쪽에 서있던 신부 친구들 중에 한 명이 달려나와 부케를 가로챈 것이다. "좋았어. 아니, 시라씨. 왜 그렇게 빨라요. 결혼하면 다 그렇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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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에서 '미시'로, 안방극장 복귀한 채시라

SBS가 다음달 1일부터 <줄리엣의 남자> 후속으로 선보일 수목 드라마 <여자만세>의 촬영 현장이다. 결혼후 방송사를 바꿔 안방극장에 복귀하는 채시라를 비롯해 변우민, 채림, 소지섭 등이 포진했고, MBC 미니시리즈 <마지막 전쟁>으로 안방을 웃음 도가니로 만든 작가 박예랑이 대본을 써 벌써부터 화제가 되는 작품이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의 한 예식장에서 오전에 찍을 장면은 극중 노처녀로 등장하는 채시라가 친구 결혼식에 왔다가 다른 사람이 받은 부케를 가로채는 장면. 말하기는 쉽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꽃을 던져야 하고,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있는 채시라는 짧은 순간, 사람들을 헤치고 계단을 뛰어내려와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연기'가 필요한 신이었다.

몇 번의 연습을 통해 타이밍을 맞추고 촬영에 들어갔지만 실전에서는 역시 연습대로 되질 않았다. 신부역을 맡은 연기자가 꽃을 적당한 장소에 던지질 못한 것.

방송에서는 불과 2∼3초 안팎에 불과한 장면이지만, 결혼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채시라의 극중 처지와 그녀의 성격을 재미있게 표현하는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잇단 NG 속에서 촬영 강행.

30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채시라의 탁월한 '운동신경' 덕분에 그럴듯한 그림이 만들어졌다. 연출자의 OK 사인이 떨어졌다.

"역시 스포츠 드라마는 어려워." SBS 드라마 PD 중에서 입담 좋기로 소문난 오세강 PD는 까다로운 장면을 무사히 마친 연기자와 스태프들의 분위기를 살려주기 위해 슬쩍 농담을 던졌다.

다음 촬영장소로 이동 도중 김영애와 변우민이 나오는 장면을 카페에서 찍은 제작진은 이날 촬영의 하이라이트인 야외결혼식 장면을 찍을 어린이대공원으로 향했다.

채시라가 꿈에 애인 변우민이 변심해 결혼식을 하는 것을 보고 격분해 '응징'하는 장면. 문제는 그 '응징'의 강도. 그냥 달려가서 점잖게 뺨을 올려붙이는 정도가 아니라, 신부의 부케를 빼앗아 때리고, 나중에는 도망가는 변우민을 향해 발차기까지 하는 액션 드라마에 가까운 장면이 필요했다.

어린이대공원에는 그럴듯한 야외결혼식장이 꾸며졌고, '액션'을 지도할 무술감독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결혼한 몸으로 '과격한 연기'를 해야할 채시라는 담담한 표정. 오히려 어떻게 때려야 하는지, 발차기는 어디서 뛸지 일일이 점검하는 등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움직임이 빠른 장면이라 리허설은 필수. 그런데 이때 작은 사고가 생겼다. 채시라가 연습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열정적으로 변우민을 부케로 때리다 꽃이 다 빠지는 불상사가 생긴 것. "너 평소 감정 있었지" 연습때부터 모질게 맞은 변우민은 한마디 던지고, 예비 부케를 준비하지 못한 소품팀은 급히 바닥에 떨어진 꽃을 주워 다시 부케에 꽂기 바빠다.

주위에는 소문을 듣고 대공원에 나왔던 사람들이 모여들고, 드디어 촬영 개시. 비록 꿈이지만 믿었던 애인의 변심에 잔뜩 열이 받은 채시라가 달려가 밀치고, 때리고…. 정말 실감나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리고 도망가는 변우민을 향해 공중에 뛰어올라 이단 옆차기를 하는 채시라. "굿, 너무 잘하네. 이거 내가 코믹 멜로 드라마 연출하는 것 맞나?" 조금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오 PD는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채 칭찬을 했다.

'프로'답게 몸을 아끼지 않는 채시라와 변우민 덕에 걱정스러웠던 장면은 의외로 수월하게 끝났고, 다음은 앞선 촬영과는 정반대로 대학시절 다정스런 연인관계인 두사람이 데이트를 하는 장면. 어느새 '고풍스런' 장발과 퍼머머리, 그리고 약간은 촌스런 복장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두 사람은 대공원의 놀이시설을 타며 정겨운 연인들의 모습을 연출했다.

"우민 오빠와는 MBC 드라마 <아파트> 때 함께 부부로 출연했었는데, 참 호흡이 잘 맞아요. 그렇죠?" 모처럼 함께 연기를 한다며 두 사람은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이런 연기 궁합 덕분인지 촬영은 정확히 해가 지기 직전인 오후 5시 20분께 끝이 났다. 방송사 드라마 촬영으로는 드물게 일몰 직전 끝난 것.

즐거운 표정으로 장소를 정리하는 스태프들에게 오세강 PD는 긴장이 풀어지지 않게 한마디 던지는 것을 잊지 않는다.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야! 그렇지만 내일부터는 죽었다고 복창해. 내일은 새벽 6시 집합이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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