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역사스페셜','임금님 그림자' 내시들 어떻게 살았나

  • 입력 2000년 5월 17일 20시 20분


TV 사극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내시(內侍). 때로는 솜사탕같은 입발림으로 ‘성총’(聖聰)을 흐리고, 때로는 여느 충신에 버금가는 직언으로 죽음을 불사했던 군주의 그림자. KBS1 TV 역사 다큐멘터리인 ‘역사스페셜’(토 밤8·00)은 20일 왕조 시대 정치 메커니즘에서 내시의 기능을 조망하는 ‘제3의 세력- 내시’ 편을 방송한다.

신라시대에 처음 등장한 내시는 역사 속에서 늘 무시되고 천시돼왔다. 보통 내시는 남성 기능을 상실한 고자, 즉 환자(宦子)를 의미하는데 이들은 보통 네 부류로 구분됐다. ‘특수한 사정’에 의해 강제적으로 거세된 자와 ‘사고’로 인해 거세된 자, 선천적인 고자, 자궁자 및 준자궁자이다. 자궁자는 스스로 거세한 자를 말하고, 준자궁자는 가족에 의해 거세된 자를 지칭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각종 사료를 통해 내시의 사회적 ‘계급’이 상상 이상으로 높았고, 국가에서도 이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가족들이 식구 중 한 사람을 거세해 ‘만든’ 준자궁자는 ‘멀쩡한’ 일반 백성이 궁궐생활을 동경한 데서 비롯됐을 정도. 고려말에는 집단적으로 내시를 교육시키는 사설 양성소까지 생겼다. 또한 조선 성종 때 완성된 통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내시의 승진 규정까지 명시돼 있다.

제작진은 내시들의 생활이 보통 사람들과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도 보여준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내시 윤득부를 시조로 하는 족보 한 권이 남아 있다. 이 책에는 “내시들은 같은 성을 가진 남자를 양자로 삼아 대를 잇는 데, 낳은 은혜 못지 않게 키우는 은혜도 크기 때문에 이를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즉 궁중으로 출퇴근하며 부인을 맞아 양자를 길러 보통의 ‘남자’처럼 살았다는 것.

또 이 프로그램은 역사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내시의 후손을 인터뷰했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는 내시의 집단 묘지가 있는 데, 여기에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업고 의주까지 피난간 공로로 ‘연양군’에 봉해진 내시 김계한의 15대 후손인 유재현씨(72)가 ‘선산’을 지키고 있었다. 유씨는 “사극에서 내관을 발길로 찬다든지 반말로 욕한다든지 하는 장면은 실제로는 없었던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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