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화, 독립 영화는 이제 국제영화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희귀종이 돼버렸나. 이번 가을 한국과 미국의 극장가는 스타들을 앞세운 대작 영화들로 예약이 끝나버렸다.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는 미안하지만 없다.
국내 가을시즌은 지금까지 잔잔한 드라마와 예술영화, 추석연휴를 노린 한국영화들로 조용하게 손님을 끌어왔다. 그러나 올 가을 메뉴는 값비싼 외화들로 가득차 있다. 여름시장을 휩쓴 직배사들이 가을에도 대작들을 내놓을 태세고 최근 잇따라 영화산업에 진출한 대기업들이 수입한 영화들도 줄지어 있다. 대부분 멜 기브슨과 브래드 피트, 해리슨 포드 등 개런티 2천만달러(1백80억원)가 넘는 비싼 배우를 동원해 제작비 1억달러(9백억원)이상을 쓴 영화들.
스타일은 여름보다 다양하다. 미국 대통령으로 분장한 해리슨 포드가 총을 들고 싸우는 「에어포스원」과 잃어버린 핵무기의 행방을 좇는 「피스메이커」, CIA가 인간의 두뇌를 조작해 암살자로 만든다는 「컨스피러시」 등 액션 영화가 첫번째 메뉴.
「대부」의 알 파치노와 젊은 반항아 조니 뎁이 마피아의 세대교체를 이루는 「도니 브래스코」같은 갱스터 무비가 두번째다.
레오 톨스토이의 고전을 화려한 영상으로 부활시킨 멜로영화 「안나 카레니나」도 있다.
생각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프라하의 봄」의 히어로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주연한 영국영화 「크루서블」이 기다린다. 그 틈새로 국산 멜로드라마 「접속」 「꽃을 든 남자」 등이 개봉될 예정이다.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 최근 미국에서는 극장 건립붐이 일어 한 지붕아래 보통 20개 이상의 스크린을 가진 극장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덕분에 새 영화들은 미국 전역에서 3천개, 적어도 2천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된다. 흥행 경쟁도 더욱 심해져 「결승전」이 빨라졌다. 이제 1,2주 안에 관객을 끌지 못하면 끝까지 회복할 수 없다. 출발이 시원치 않아도 작품만 좋으면 입소문을 통해 서서히 관객이 몰려들었던 과거의 사례는 찾기 힘들어진 것이다.이는 극장이 늘어남으로써 보다 다양한 영화가 선뵈는 것이 아니라 몇몇 대규모 영화들의 「융단 폭격장」으로 점령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2000년까지 대기업들에 의해 대규모 극장들이 많이 들어설 국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한 배급업자는 주간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규모는 아주 중요하다. 이젠 여름 겨울뿐 아니라 가을 봄 어떤 시즌이든 큰 규모의 영화들로 단기간에 승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털어놓았다.
〈신연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