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4년 차를 맞은 지금, 산업 현장은 분명한 변곡점 앞에 서 있다. 법 시행 이후 감소하던 중대재해 사망자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기존 안전관리 방식의 한계가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사법 당국의 기준은 한층 엄격해지고 있다.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 인정 기준’도 기존 70점에서 90점으로 상향됐으며, 국민연금도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한 감점 확대를 결정했다. 이런 환경에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법부는 경영진에게 안전관리체계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실제 작동 여부’를 집요하게 확인한다. 위험성평가 결과를 경영진이 정기적으로 보고받았는지, 개선 지시를 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결국 기업들이 직면한 질문은 ‘경영진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로 수렴된다. 이제는 기억과 문서에 의존한 기존의 관리 방식, 혹은 현장 실무자의 자체 판단에 맡기는 방식으로는 강화되는 법 제도와 시장 요구를 충족할 수 없게 됐다. 안전관리를 디지털화해 휴먼에러(human error)를 미연에 방지하는 한편,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시에 의사결정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최근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위험 예측 방식으로 전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는 변화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 1400개 매장에 근로자 6만5000명을 둔 영국 유통기업 마크스앤드스펜서는 비전 AI(지능형 CCTV)를 설치한 뒤 10주 만에 사고를 80% 줄였다. 비전 AI가 근로자의 안전장구 착용 여부를 확인하고, 근로자와 지게차의 움직임을 분석해 동선을 분리하는 등 잠재적 위험 요인을 사전에 제거한 결과다.
사우디의 한 건설사는 작업자가 착용하는 웨어러블 센서를 활용해 현장 응급 의료 발생률을 63% 낮췄다. 폭염에 따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웨어러블 센서를 통해 근로자의 체온과 심박수 등을 모니터링하며 수분 섭취와 휴식을 제공한 덕이다.
이처럼 산업 현장에서 AI의 재해 예방 효과는 분명하다. 1년 365일 현장을 관찰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 상황을 진단, 사고 발생을 예측해 위험을 신속히 알리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웨어러블 장비의 발전은 AI의 감지 능력을 확장시켜, 작업자의 위험 행동이나 잠재 위험 요소 등을 실시간으로 알려 현장의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게 한다.
중대재해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잘 구축된 안전관리 시스템과 안전 의무 이행 데이터를 확보해 뒀다면 사고 예방 가능성은 올라가며, 불가피한 사고로 인한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 데이터와 AI 기술이 결합된 안전관리 시스템은 규제 준수 수단을 넘어 기업 지속가능성을 증명하는 경영 인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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