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10명중 3명 “번아웃 경험”… 주된 이유는 ‘진로 불안’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7일 03시 00분


국가데이터처, ‘청년 삶의 질’ 조사
취업 성공해도 만족도 36%에 그쳐… ‘업무 과중-업무 회의’도 번아웃 원인
고시원 등 거주 5.3%… 7년새 최고치
‘30대 쉬었음’ 작년 첫 30만명 넘어… “미래 실현 불가” 2년새 2.4%P ↑

대학 졸업을 미루고 2년째 취업을 준비하는 김모 씨(26)는 최근 지치고 무력한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 계속 채용시험에 탈락하자 자신감이 없어지고 매사 피곤하기만 했다. 김 씨는 “눈높이를 낮춰 지원해도 탈락하니까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만사가 귀찮다”며 “혹시 ‘번아웃’ 증상 아닐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청년 10명 중 3명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기력함을 느끼는 ‘번아웃’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취업난이 극심해지자 청년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청년 자살률도 10만 명당 24.4명으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청년들의 정신 건강과 주거 환경 등이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무르며 삶의 만족도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 10명 중 3명이 번아웃… “진로가 불안하다”

국가데이터처는 16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를 발간했다. 건강, 여가, 고용, 신뢰·공정, 주거 등 기존 62개 통계지표를 종합해 청년들의 삶을 파악해 보는 취지로 올해 처음 나온 보고서다. 항목별 청년 기준이나 조사 시점이 조금씩 다르다. 지난해 19∼34세 청년 인구는 1040만4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20.1%를 차지했다. 2000년 인구 비율 28.0%에서 쪼그라든 수치다.

지난해 번아웃을 경험한 청년은 조사 대상(1만5098명)의 32.2%에 이르렀다. 이들이 번아웃을 느낀 이유로는 ‘진로 불안’(39.1%)이 가장 많았고 이어 ‘업무 과중’(18.4%), ‘업무에 회의가 들어서’(15.6%), ‘일과 삶의 불균형’(11.6%) 순이었다. 취업에 성공한 19∼34세 청년들의 일자리 만족도는 36.0%(2023년)에 그쳤다. 지난해 청년층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4.4명으로 2011년(25.7명) 이후 가장 높았다.

청년들의 주거 환경도 열악해지고 있다. 지난해 고시원, 숙박업소, 판잣집 등 주택이 아닌 거처에 사는 19∼34세 가구주의 비율은 5.3%로 2017년(5.4%) 이후 가장 높았다. 특히 집값이 비싼 서울 등 수도권에 사는 청년은 이 비율이 5.7%로 더 높았다.

19∼34세 청년층의 가구 중위소득은 2023년 3778만 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의 상대적 빈곤율도 같은 해 7.6%로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는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이 많아 청년층의 소득이나 빈곤율이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데이터처의 설명이다. 게다가 청년 가구주의 가구 부채 비율은 2023년 172.8%로 전체 가구(167.6%)보다 높았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한국 청년(15∼29세)의 2021∼2023년 평균 삶의 만족도는 6.5점으로 OECD 38개 회원국 평균(6.8점)보다 0.3점 낮았다. 38개국 가운데 31번째다.

● 고용 악화로 삶의 질 더 악화 우려

문제는 청년 고용 상황이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15∼29세 고용률은 2024년 5월부터 19개월 연속 전년 같은 달 대비 감소하고 있다.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도 급증하고 있다. 15∼29세 쉬었음 인구는 2023년 이후 계속 40만 명 이상이고, 30대마저 쉬었음 인구가 지난해 처음 30만 명을 넘어섰다.

미래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청년도 많아졌다. 지난해 실시된 19∼34세 청년의 미래 실현 인식 조사에서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전혀 실현할 수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7.6%로 2년 전보다 2.4%포인트 올랐다.

전문가들은 청년층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보다 일자리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봤다. 취업난을 겪는 청년에게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고, 쉬었음 인구를 노동시장으로 끌어낼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유럽연합(EU) 모델을 벤치마킹해 구조적으로 장기화된 청년 취업을 지원하는 한국형 ‘청년보장제’(유스 개런티·Youth Guarantee)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주거, 부채, 정신 건강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지금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은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일자리 대책만으론 한계가 있다”며 “한국형 유스 개런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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