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전 1년 의료비 10년 새 2배 급증…소득 하위층엔 재난 수준
한은 “고통지수 상위 20%, 최대 통증의 13배…제도 개선 시급”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들이 복도를 오가고 있다. (기사와 관련없는 자료사진) 뉴스1
65세 이상 고령층 10명 중 8명은 회생 가능성이 없을 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실제 의료 현장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비율은 2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의 선호와 의료 현실 간의 ‘괴리’로 인해 임종을 앞둔 환자는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겪고, 가족들은 간병비 등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11일 공동으로 발표한 ‘BOK 이슈노트: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노인실태조사 결과 65세 이상 고령층의 84.1%는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실제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비율은 16.7%에 그쳤다.
오히려 사망자 대비 연명의료를 받은 환자 비중은 2018년 55%에서 2023년 67%로 확대되는 등 환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연명의료가 지속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연구진이 연명의료 시술의 강도와 빈도를 반영해 산출한 ‘연명의료 고통지수’를 보면, 연명의료 환자가 겪는 평균적인 신체적 고통은 단일 질환이나 시술에서 느끼는 최대 통증의 약 3.5배에 달했다.
특히 고통지수 상위 20%에 해당하는 환자가 겪는 고통은 최대 통증의 12.7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돼, 일부 환자군이 생애 말기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시각적 통증 척도(VAS)상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10점)을 12번 넘게 겪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착용 등 고통스러운 시술이 임종 직전까지 반복되면서 통증이 가중·누적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무의미한 연명의료 지속은 환자와 가족에게 과도한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연명의료 환자가 임종 전 1년간 지출하는 ‘생애 말기 의료비’ 중 환자 본인부담금은 2013년 547만 원에서 2023년 1088만 원으로 10년 새 약 2배로 늘었다.
이는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의 약 40%에 달하는 수준이다. 저소득층 가구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적 부담이 되는 것이다.
직접적인 의료비 외에 간병비 등 간접 비용 부담도 상당한 수준이다. 연구진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명의료를 지속한 가족의 48.9%는 간병인을 고용한 경험이 있었으며, 월평균 224만 원을 지출했다.
또한 가족이 직접 간병을 위해 일을 그만두거나 휴직한 경우도 46.5%에 달했고, 이로 인한 소득 감소액은 월평균 327만 원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이처럼 환자 선호와 의료 현실 간 괴리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죽음에 대한 논의 부족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등 인프라 접근성 제한 △모호한 임종기 판단 기준 △호스피스 등 대안적 돌봄 시설 부족 등을 꼽았다.
실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려면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병원이어야 한다. 하지만 요양병원 등 중소병원은 설치율이 저조해 환자들이 제도를 활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현행법상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지만, 의학적으로 임종기를 예측하기 어려워 환자가 원치 않는 시술이 임종 직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실제 임종 1개월 내 연명의료를 중단한 사례 중 40%는 사망 1주일 전이나 되어서야 중단이 결정됐다.
연구진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개인화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도입을 제안했다.
현행 서식은 연명의료 중단 여부만 선택하게 돼 있다. 이를 개선해 개별 시술별로 선택권을 부여하고 인공영양공급이나 장기기증 의사 등도 명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연구진은 1차 의료기관에서도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결정 대리인 제도 도입과 연명의료 중단 이행 시점 조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연구진은 연명의료 시술 비율을 환자 선호에 부합하는 수준(약 15%)으로 낮출 경우,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여 2070년 기준 약 13조 3000억 원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인로 한은 경제연구원 인구노동연구실 차장은 “비용 절감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확보된 재원을 호스피스나 완화의료 등 환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생애 말기 돌봄 서비스에 재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