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도 ‘데이터 전쟁’… 스마트팜이 한국 농업 다시 설계한다

  • 동아일보

FTA 시대 맞아 농산물 경쟁 심화… 안정적 생산-균일 품질 핵심 과제
정부 ‘스마트팜 ICT융합사업’ 추진
‘스마트팜 토마토’ 평균생산량 5배… 운영 기술 넘어 수출 실무도 교육

㈜베베스팜 스마트팜 전경. ㈜베베스팜 제공
㈜베베스팜 스마트팜 전경. ㈜베베스팜 제공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수출입 시장이 넓어지면서 농산물에 대한 경쟁 기준도 한층 높아졌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농촌 인력 감소까지 겹치면서 ‘균일한 품질’과 ‘안정적인 생산량’을 확보하는 일이 농업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가 추진 중인 ‘스마트팜ICT융복합확산사업’은 이런 환경 변화에 대응해 재배 과정에서 센서·자동화·데이터 기반 관리를 도입하도록 지원해 농가의 안정성과 품질 표준화를 뒷받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스마일팜 스마트팜 전경. ㈜스마일팜 제공
㈜스마일팜 스마트팜 전경. ㈜스마일팜 제공
스마트팜은 온도·습도·광량·CO₂ 등 재배 환경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농업 기술로 생육 단계별 정밀한 환경 관리가 중요한 딸기,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같은 고부가가치 작목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스마트팜 보급 면적은 약 8955㏊로 전체 시설원예 면적의 약 16%를 차지한다.

전북 김제에 있는 딸기 농장 ㈜베베스팜과 방울토마토 농장 ㈜스마일팜은 스마트 농업 전환을 현장에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농사 이끄는 데이터… ICT 환경제어로 딸기 재배

㈜베베스팜 출하 앞둔 생산딸기. ㈜베베스팜 제공
㈜베베스팜 출하 앞둔 생산딸기. ㈜베베스팜 제공
전북 김제시 백구면에 위치한 ㈜베베스팜은 ICT 기반 환경제어 시스템을 갖춘 유리온실 딸기 농장이다. 이상민 대표는 “처음 농업에 뛰어들 때 작업자의 숙련도나 감(感)에만 의존하지 않고 누구나 같은 품질을 낼 수 있는 ‘시스템 중심’ 재배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며 농장 설계 단계부터 스마트팜을 전제로 온실을 지었다고 말했다.

㈜베베스팜 딸기 체험 전경. ㈜베베스팜
㈜베베스팜 딸기 체험 전경. ㈜베베스팜
베베스팜은 온실 안팎의 온도·습도·조도·CO₂ 농도는 물론 양액의 pH(산도)와 EC(전기전도도)까지 실시간으로 측정해 환기, 차광, 순환 팬, 무인 방제 장비가 생육 주기에 맞춰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구성했다. 이 같은 자동·정밀 제어 덕분에 생육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해 딸기 품질의 균일성과 농장 운영의 안정성도 함께 높아졌다.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베베스팜이 ICT 시스템을 본격 도입한 지난해 평(3.3㎡)당 조수입(필요경비를 빼지 않은 수입)은 약 18만 원에서 22만 원으로 22.2%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방제비는 60% 이상 줄었고 연간 방제에 들어가던 노동시간도 30시간가량 절감됐다.

기상 편차 줄여 토마토 품질 표준화… 생산량 5배

전북 김제시 공덕면의 방울토마토 농장 ㈜스마일팜은 온실 내부의 온도·습도·광량·CO₂ 농도를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시스템을 갖춘 스마트팜이다. 허무현 대표는 노지 재배에서 겪던 수확량과 품질의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해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스마트팜 재배 방식을 도입했다. 그는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토마토는 환경을 얼마나 정밀하게 제어하느냐에 따라 상품성이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스마일팜의 복합 환경제어 시스템은 자동 환기, 순환 팬, 보온 커튼, CO₂ 주입 장치를 연동해 온실 내부의 생육 환경이 자동으로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설계했다. 허 대표는 작물 생육 상태를 점검해 필요한 경우 세부 설정만 미세하게 조정함으로써 기후변화나 외부 요인으로 생길 수 있는 품질 편차를 최소화하고 있다. 이 시스템 덕분에 스마일팜의 방울토마토 평균 생산량은 1㏊당 344t으로 일반 시설재배 농가의 약 5배에 이른다. 단위면적당 조수입도 6913만 원으로 일반 대비 240% 높다.

허 대표는 “요즘처럼 기후가 불안정한 시기에 복합 환경제어 시스템을 활용하면 균일한 품질의 작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팜,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역할

앞서 살펴본 두 농가의 공통점은 ‘같은 품질을, 같은 속도로, 반복해서 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기술로 답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데이터와 자동화를 바탕으로 재배 환경을 표준화해 기후나 계절이 바뀌어도 품질 편차를 최소화했고 그 위에 안정적인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이는 결국 ‘재현 가능한 생산→납품의 안정화→거래처 신뢰 형성→가격 방어’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기술과 데이터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스마트팜 확산은 이제 농가의 생산성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 우리 농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스마트팜ICT융복합확산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청년보육과정을 연계해 운영하는 것도 결국 농업 현장의 재배를 데이터 기반으로 표준화하려는 정책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자동화와 정밀제어 기술로 확보한 생산의 일관성은 곧 ‘브랜드로서의 농산물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이렇게 쌓인 경험은 장비·소프트웨어·운영 기법이 총망라된 한국산 스마트팜 패키지 수출로도 확장될 수 있다.

농업인 대상 교육… 기술 넘어 경영 역량까지 강화

정부는 스마트팜 운영 기술과 수출·무역 실무를 함께 다루는 교육과정을 여러 경로로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팜코리아 및 농업교육포털을 통해 스마트팜 운영, 데이터 분석, 해외시장 대응 과정을 묶어 제공해 단순히 기술·장비를 보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수출을 목표로 하는 농가의 경영 역량까지 끌어올리려는 취지다. 지금까지 수천 명의 농업인이 이 과정에 참여했으며 교육을 받은 농가 중 일부는 해외 업체와 상담을 진행하거나 MOU를 체결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 결국 농업 경쟁력의 본질은 ‘운영의 표준화’에 있다. 스마트팜 기술은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변화, 병해충 발생, 노동력 부족 같은 변수를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여 생산부터 유통까지 계획할 수 있는 체계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제 농업은 예전처럼 농부의 감과 경험에 의존하던 단계를 지나 온도·습도·광량·양액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자동화된 설비가 생육 환경을 스스로 조정하며 이렇게 얻은 결과가 다시 데이터로 축적되는 구조가 점차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감이 아닌 데이터’ ‘일회성이 아닌 반복 가능한 품질’이라는 말이 의미를 갖는다. 스마트농업은 이 ‘지속성’과 ‘재현성’을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우리 농업을 다시 설계하고 있다. 결국 이 두 키워드가 스마트농업이 한국 농업에 던지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이자 FTA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경쟁력의 정의다.

제작 지원: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촌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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