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쏘아 올린 ‘골드러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2일 03시 00분


관세 전쟁發 안전자산 金 선호 현상
국내 거래소 하루 거래 1000억 첫 돌파

1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종로본점에 골드바가 전시돼 있다. 국제 금 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10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금 선물 가격(온스당)은 전일 대비 1.7% 상승한 2936.80달러에 거래됐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 전쟁 등으로 연일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자 글로벌 투자자들이 전통 안전자산인 금에 몰리고 있다. 치솟는 금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국내에선 한국조폐공사가 금 판매를 일시 중단했고, 국제 금 시장에서도 금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10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COMEX)에 따르면 4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2934.4달러에 거래를 마치면서 사상 최초로 2900달러를 넘어섰다. 연초 대비 10% 이상, 전년 대비 무려 40% 넘게 상승한 가격이다.

투자자들의 금 투자 열기에 국내 유일의 금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인 ‘ACE KRX금현물’ ETF의 순자산액은 10일 기준 전년 동기 7배 수준인 9086억 원으로 불어났다. KRX 금 거래소 일일 거래대금도 6일 사상 처음으로 1000억 원을 넘어섰다.

금 사재기 열풍까지 나타나고 있다. 미국 내에서 금 가격이 급등하자, 투자자들은 영국 런던 시장으로 옮겨가 금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조폐공사가 수급 여건 악화로 이날부터 금 판매를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조폐공사로부터 금을 공급받아 온 일부 국내 은행도 온라인 및 창구 판매를 당분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돌반지 한돈 60만원… “금 사겠다” 급증에 조폐公 판매 일시중단


[천정부지 금값]
통상전쟁에 안전자산 金 최고가… “웃돈 줘도 못사, 말 그대로 금값”
1g당 15만9410원… 1년새 84% 급증
현물 ETF 수익률 올들어 26% 올라
金 관세 부과 우려에 美선 ‘사재기’… 각국 중앙은행, 3년째 1000t씩 매입
“금값이 말 그대로 금값입니다.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파는 사람은 없어요. 웃돈 주고도 원하는 물량 구하기 어렵습니다.”

서울 종로에서 귀금속 도매상을 하는 박모 씨(48)는 최근 금 시장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완벽한 ‘판매자 우위’ 시장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골드바를 사고 싶다는 문의가 많이 오지만 물량이 없다”며 “금을 가진 사람들은 더 오를 거란 기대감에 팔지 않고, 구매자만 몰리다 보니 금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금 가격이 오르면서 돌잔치 선물도 바뀌고 있다. 돌 반지 한 돈(3.75g) 가격이 60만 원까지 치솟자 1g짜리 반지까지 등장했다. 최근 돌 잔치를 한 이모 씨(42)는 “돌 선물로 반지보다는 현금이나 장난감 선물이 많았다”며 “금값이 오르면서 한 돈짜리 돌 반지를 받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 韓 금 가격, 1년 만에 83% 이상 올라

11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금 1kg 현물의 g당 가격은 전일 대비 4.33% 오른 15만941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사상 최고가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83.91%가량 올랐다. 같은 기간 국제 금 시세 상승 폭보다 두 배가량 큰 것으로, 이는 국내 금 수급 문제와 함께 원-달러 환율 상승 여파까지 겹친 영향이 크다.

금값이 상승하면서 금 관련 투자 상품의 수익률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국내 금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인 ‘ACE KRX 금현물’ ETF는 올 들어 25.56% 올랐다. 금 선물과 연동한 ‘KODEX 골드선물(H)’과 ‘TIGER 골드선물(H)’ 등도 올 들어 각각 11.09%, 10.63% 상승했다.

골드바 등 금 현물 투자에 몰리면서 금 품귀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한국조폐공사에서는 물량 부족으로 이날부터 일시적으로 금 판매를 중단했다. 앞서 6일에는 한국금거래소 홈페이지에 이용자가 몰리면서 일시적으로 먹통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민철 한국금거래소 이사는 “금 현물을 확보하기 어려워 고객들이 물건을 받기 위해 2주 이상 기다려야 한다”며 “최근 주문이 2배 이상 급증하는 등 국내외에서 금 수요가 크게 늘어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잇따른 관세 위협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 등 안전 자산 쏠림 현상이 거세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 미국 현지에서는 귀금속에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에 ‘금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미국 금 가격에 ‘프리미엄’까지 붙으면서 영국에서 금을 매입해 미국에서 파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박진영 코리아피디에스 선임연구원은 “최근 JP모건은 약 40억 달러 규모의 금을 영국에서 매입한 뒤 뉴욕상업거래소(COMEX)에 인도할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는 1994년 이후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인도 물량”이라고 말했다.

● “금값, 온스당 3000달러 돌파는 시간문제”

전문가들은 당분간 금 가격이 지속해서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금 투자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금 매집 국가인 중국은 최근 자국의 10대 보험사가 자산의 최대 1%까지 금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각국의 중앙은행들도 지난해까지 3년 연속으로 연간 1000t 이상의 금을 매입하면서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씨티 등 글로벌 IB들은 금 가격이 조만간 1온스(약 28.3g)당 30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금 가격이 온스당 3000달러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라면서 “당분간 금값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금값이 급등한 데 대한 조정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기 침체가 올 경우 금 가격은 많이 오른 만큼 더 가파르게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골드러시#통상전쟁#안전자산#금 사재기 열풍#금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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