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아이파크’ 붕괴 3년, 원청-하청 네탓만… “6명 죽음에도 바뀐게 없어”[히어로콘텐츠/누락 번외편]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4일 03시 00분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
1심 최후변론서 서로 네탓 공방
유족들 “잘못 인정-반성 모습 없어
누굴 붙잡고 원망해야 하나” 하소연

2022년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로 매형이 숨진 안정호 씨(희생자가족협의회 대표)가 지난해 11월 4일 재건설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외벽이 붕괴된 201동이 있던 자리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광주=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HDC현대산업개발은 ‘동바리(임시 거치대)’ 해체를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시공사 현대산업개발)

“하청업체는 동바리 해체 과정을 절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하청업체 가현)

지난해 11월 4일 오후 2시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201호. 2022년 1월 11일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의 1심 결심 공판 최후 변론이 이어졌다. 시공사 현대산업개발(현산)’과 하청업체 ‘가현’은 서로 책임을 미뤘다. 붕괴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힌 동바리 해체를 누가 지시했는지를 둘러싼 대립이었다. 법정 밖 ‘재판 안내 게시판’에는 현산, 가현, 감리업체인 건축사무소 ‘광장’을 포함해 관계자와 법인 등 총 20명이 ‘피고인’으로 적혀 있었다.

당시 사고로 총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1심 선고는 사고 발생 3년 만인 지난달 20일 내려졌다.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고상영)는 원청인 현산과 하청인 가현 모두에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며 양측 현장소장 2명에게 최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다만 기소된 이들 중 경영진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1심 결심 공판을 참관해 피고인들의 최후 변론을 들었다. 붕괴 사고 이후 책임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안전한 건설 현장을 만들겠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약속은 지켜졌는지 사고 3년 후의 상황을 추적했다.

● ‘동바리 해체’ 경위 명확한 진술 없어

법원의 선고 전 검찰 구형 이후 피고인 최후 변론이 시작됐다. 그 누구도 건물이 어쩌다 무너졌는지 명확히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다.

3년 전 사고 당일, 원청 현장소장은 부임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이었다. 안전 총괄 담당자는 사고 나흘 전부터 가족 휴가를 떠나 현장을 비웠다. 붕괴된 201동의 담당 감리는 개인 사정으로 다른 감리에게 일을 부탁하고 현장을 비운 사이 일이 벌어졌다.

‘동바리 해체’를 누가 지시했는지, 잘못된 지시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피고인 중 한 명인 원청 계약직 사원은 “현장을 감독해야 할 직원이 충원되지 못해 현장에서 채용했다”며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 당연히 있어야 하는 서포트(지지대)가 정말 ‘제대로’ 있는지 확인할 시간이 있었을까”하고 말했다. 하청 현장소장은 “어느 하나라도 제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이 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1심 법원은 권순호 현산 전 대표이사 등 경영진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추상적인 지휘 감독의 책임’은 있지만 직원의 과실에 대한 직접적인 주의의무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감리업체 ‘광장’ 소속 감리들은 징역 1년 6개월~3년에 집행유예 3~5년을 선고받았다. ‘원청과 하청이 공사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집유 선고 이유였다. 현산, 가현, 광장 각각 법인에는 5억 원, 3억 원, 1억 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광주지검은 항소했다. 1심이 원청과 하청 경영진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의 위법이 있어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았다”며 “피해 규모가 컸음을 고려하면 더 무거운 형이 선고되어야 한다”고 했다.

● “여섯 명이 죽었지만 바뀌는 것 없어”

히어로팀은 지난해 11월 4일 오후 2시 광주 북구 ‘경동택배’ 창고에서 아이파크 붕괴 사고 희생자가족협의회 대표인 안정호 씨를 만났다. 인테리어 일을 하는 안 씨는 작업 일정과 대금 등을 조율하느라 분주했다.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리는데 창고로 배송된 매트리스, 합판, 카펫 등 택배 물품도 정리해야 했다.

그 시간 광주지법에서는 1심 재판이 진행 중이었지만 안 씨는 가지 않았다. 당시 붕괴로 안 씨는 매형 유모 씨를 잃었다. 매형은 안 씨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준 사범이자 함께 체육관을 운영했던 인생의 동반자였다. 사고 날, 안 씨는 일을 하다가 변고를 접했다.

안 씨는 검찰이 구형하는 결심 공판에 안 갔다. 다른 유가족들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안 대표는 “유가족들은 재판이 시작될 무렵만 해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처벌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며 한동안 재판도 꾸준히 참관했다고 했다. “혹시라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재판은 다르게 흘러갔다. 현산과 가현은 붕괴의 책임 소재를 두고 긴 공방을 벌였다.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이러다 재판이 ‘꼬리 자르기’ 식으로 결론 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안 씨는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이 처벌받는 일이 정말 어렵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느 정도 지켜본 뒤 ‘이미 끝났구나’ 생각했습니다.”

안 씨는 결심 공판에 불참하며 “여섯 분의 죽음 이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잖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노가다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않은 일이 됐다”며 “누구 하나만 잘못해서 발생한 사고가 아닌데 유족들은 누구를 붙잡고 원망해야 하냐”고 했다.

● 시공사-감리사는 아직 영업 중

사고 이후 2022년 3월 국토교통부는 서울시 측에 현산에 대해 ‘등록 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의 엄중 처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현산은 여전히 영업 중이다. 처분 권한이 있는 서울시는 이달 3일 현재까지 영업 정지 등 어떤 행정 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감리업체 광장은 화정 사고 이후 2022년 9월 경기도로부터 영업 정지 1년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제기한 행정취소소송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영업을 재개했다. 광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인천 서구 검단 아파트 공사 감리와 설계를 맡았다.

2023년 4월 29일 오후 11시 반경 검단 아파트는 공사 도중 지하 주차장이 붕괴됐다. 유력한 원인은 ‘철근 누락’이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https://original.donga.com/2025/APT)로 연결됩니다.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donga-ilb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



#화정 아이파크#붕괴사고#아파트 부실공사#감리#LH#철근 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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