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플랫폼을 축으로 성장하는 ‘돌봄 경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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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NOW]
자녀 돌봄 앞세운 연수 프로그램 인기… 돌봄, 경제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아
약자 돌보는 시장… 기술로 도약, 촘촘히 들어선 플랫폼이 돌봄 수행
로봇, 돌봄을 위한 핵심 기술로 성장… 편의점, 사람 돌보는 플랫폼으로 변모

돌봄 활동이 새로운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자리 잡는 현상을 ‘돌봄경제’라고 한다. 특히 로봇은 돌봄경제의 핵심 기술이 되고 있다.
 재활로봇 전문기업 엔젤로보틱스는 보행 재활 환자를 위한 의료기기와 하반신 마비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돌봄 활동이 새로운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자리 잡는 현상을 ‘돌봄경제’라고 한다. 특히 로봇은 돌봄경제의 핵심 기술이 되고 있다. 재활로봇 전문기업 엔젤로보틱스는 보행 재활 환자를 위한 의료기기와 하반신 마비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직원들이 너도나도 참석하고 싶어 해 화제가 된 회사 교육연수 프로그램이 있다. 신한은행이 2023년 4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 특강’이다. 2023년 초 리모델링을 마친 연수원은 호텔급 시설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인기몰이를 하는 이유는 고급 시설 때문만이 아니다. 직원들이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자녀들을 돌봐주기 때문이다. 연령대에 맞춰 준비된 체험학습에 아이들이 빠져 있는 동안 부모는 오롯이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다. 교육이 끝난 저녁 시간엔 대강당에서 영화를 관람하거나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흡사 고급 리조트에 놀러온 것 같다.

흥미롭지 않은가? 직원들이 그토록 가기 싫어하던 교육 프로그램을 추첨에 당첨되어야만 갈 수 있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탈바꿈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 바로 ‘자녀의 돌봄’이란 사실이 말이다.

흔히 돌봄이란 나보다 약한 사람이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이 돌봄의 개념이 최근 극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건강이나 나이 때문에 자립하기 어려운 사람을 보살펴주는 것이 과거의 돌봄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장애가 없더라도 누구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돌봄 활동이 가족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기술적으로 확장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돌봄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경계가 흐려지고 돌봄이라는 영역이 새로운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성장하는 현상을 ‘돌봄경제’라고 명명한다.

앞으로 다가올 돌봄경제는 두 가지 축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 약자를 돌보는 시장은 ‘기술’의 도움을 받아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로봇 기술은 돌봄을 위한 핵심 기술로 성장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준비하고 있는 착용형 보조기구 로봇 ‘EX1’은 노인 운동을 돕는 ‘시니어 케어’ 특화 로봇이다. 재활로봇 전문기업 엔젤로보틱스는 보행재활 환자를 위한 의료기기와 하반신 마비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 등을 개발하고 있다. 위로보틱스는 일반인들도 가볍게 착용할 수 있는 초경량 보행보조 웨어러블 로봇 ‘윔(WIM)’을 선보일 계획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기술도 돌봄 영역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AI 스피커를 통해 노인의 고립감을 해소하고 효능감을 강화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SK텔레콤은 2400개 단어를 학습한 감성어사전을 자사 AI 스피커 누구(NUGU) 시스템에 탑재했다. 스피커에 말을 거는 고령자들의 발화를 분석해 우울·고독·안녕감·행복감 등 네 가지 항목으로 감지해 정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되면 심리상담이나 지방자치단체로 연결해준다.

돌봄경제의 두 번째 방향은 전 국민의 일상을 돌보는 시장의 성장이다. 특히 거미줄처럼 우리 삶에 촘촘히 들어와 있는 ‘플랫폼’이 돌봄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효성ITX가 서울 강남구, 강동구, 송파구, 경기 하남시 미사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선보인 ‘We웃’은 신뢰 기반 하이퍼 로컬 서비스다. 거주 인증을 통해 동네 이웃들과 소통 및 생활에 필요한 거래가 이뤄진다. 미션 진행을 통해 포인트가 제공되는 형태인데, 이웃이 올린 미션을 수행해 포인트를 모으거나 내가 가진 포인트를 사용해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필요한 물품 사다 주기, 쓰레기 분리배출, 강아지 산책, 물품 대여 등 일상 속 다양한 도움을 이웃과 주고받을 수 있다.

24시간 불을 밝히는 편의점 역시 사람들을 돌보는 일상 플랫폼으로 변모한다. 편의점 CU는 2017년부터 지역사회의 ‘파출소’ 역할을 맡고 있다. 결제 부스 내부나 단말기에 미리 지정된 경찰기관으로 연결되는 신고 버튼은 위급 상황에 간편히 누를 수 있다. 편의점과 경찰의 협력 치안을 통해 길 잃은 아동이나 학대 아동을 긴급 보호하거나 범죄 위험 시 빠른 신고가 가능해 동네의 안전망으로 자리 잡았다.

낸시 폴브레 미국 앰허스트 매사추세츠대 명예교수는 저서 ‘보이지 않는 가슴(The Invisible Heart)’에서, 자본주의를 이끌어 경제 성장을 추동한 것이 자신의 이윤을 좇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면 개인주의 사회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경제적 조건은 다른 사람을 돌보려는 ‘보이지 않는 가슴’이라고 설명한다. 돌봄의 영향력은 연쇄적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돌봄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도 잘 돌볼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사회 전체의 건강함을 높이는 밑거름이 된다. 2024년, 돌봄경제가 우리 사회에 가져올 산업적 파급 효과에 주목하자.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원
#돌봄경제#기술#플랫폼#ex1#wim#nugu#we웃#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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