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국에서 수출한 부품서, 호주 경찰 500kg 필로폰 적발
국내에도 마약 대량 유입 비상… 부산세관, 檢 도움없이 수사 착수
멕시코→한국→호주 경로 역추적, 전국 돌며 부품 행방 집중 탐색

2021년 7월 부산세관 직원 2명이 404㎏의 필로폰을 적발했다. 1350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의 마약은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도 흔적이 감지됐다. 국내 최대 마약 밀수를 막아냈던 41일간의 이야기를 되짚어 봤다.》
3일 부산 강서구 부산세관 검사장. 2t 무게의 톱니바퀴 모양 쇳덩이 9개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지름이 80∼90cm 정도인 항공기용 부품 ‘헬리컬 기어’다. 부품 가운데 난 구멍에 마약 검출 시약을 갖다 대자 5분도 안 돼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 세관 직원 2명이 404kg의 필로폰을 해당 부품에서 적발한 지 1년 6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흔적이 남아 있는 것. 1350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으로, 국내에서 적발된 마약류 중 최대 물량이다. 2021년 5월 27일부터 41일간 벌어진 국내 최대 마약밀수 검거 작전의 전모를 따라가 본다.
● ‘역대 최대’ 물량의 마약 적발

해당 업체는 2019년 12월과 2020년 7월에 헬리컬 기어 10개씩을 멕시코에서 국내로 수입했다. 호주에서 적발된 헬리컬 기어 11개를 제외한 나머지 9개는 국내에 있다는 얘기였다. 수사팀은 국내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필로폰 규모가 자신들이 감당하기에는 많을 것으로 보고 부산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검찰은 “구체적인 물증 없이 수사에 들어가기는 어려우니 일단 세관 주도로 수사에 착수하는 게 어떻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국내에 반입된 헬리컬 기어 9개에 필로폰이 아직 남아 있는지는 불확실했다. 수입된 지 1년이 넘은 상황에서 해당 부품의 소재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았다. 부산세관 수사팀은 고민 끝에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 검경 도움 없이 자체 수사를 진행키로 한 것. 수사팀 관계자는 “해상물류 과정에서 마약 밀반입 정보는 대부분 잘못된 경우가 많다. 자체 수사를 결정하고도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사 결과 문제의 헬리컬 기어는 현대 부산 신항만을 통해 반입된 뒤 부산시내 창고로 옮겨진 사실이 밝혀졌다. 수사팀은 창고 관리자로부터 부품들이 화물차 4대에 나뉘어 경기 포천시 물류창고로 운송됐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수사팀이 해당 창고를 찾았을 때는 이미 내부가 텅 비어 있었다. 폐쇄회로(CC)TV도 없는 창고에서 추가 단서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때 창고 구석에 있던 나무 상자가 수사팀 눈에 들어왔다. 통관 과정에서 헬리컬 기어를 보관한 상자였다. 안에는 멕시코 세관의 검역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마약의 출발지가 멕시코임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였다.
이 부품들의 행방을 둘러싼 단서는 포천 창고 관리자의 전화에서 나왔다. 창고 임대계약 당시 전화번호를 추적해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찾아낸 것. 해당 용의자의 발신 내역을 조사해 다음 목적지가 경기 양주시임을 알아냈다.
● 수사 당국 따돌리려 전국 각지로 필로폰 운송
수사팀이 양주 창고에서 발견한 건 멕시코 수입품이 아닌 국내에서 제작한 헬리컬 기어였다. 밀수범들이 멕시코 수입품의 원산지를 속이기 위해 국내에서 별도로 주문한 부품들이었다. 마약이 감춰진 부품은 어디론가 또다시 이동한 뒤였다. 수사팀 관계자는 “호주에서 마약이 적발된 뒤 국내 수사 당국의 눈을 피하려고 계속 장소를 옮긴 것”이라며 “밀수범들이 수사 과정을 알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수사팀은 양주 창고 관리자의 진술을 토대로 부품을 다른 곳으로 운송한 화물차 기사를 찾아냈다. 다음 목적지는 강원 횡성군이었다. 횡성 수사는 난항의 연속이었다. 밀수범들은 횡성군내 체육공원에서 부품을 다른 화물차로 다시 옮겨 실었다.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이른바 ‘차갈이’를 시도한 것. 주변 CCTV 확인 결과 화물차 3대가 부품을 실어갔지만 영상이 흐려 차량 번호를 육안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 결국 국가정보원의 첨단 영상장비로 차량 번호를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부품이 경기 고양시로 옮겨진 사실을 확인했다.
고양 창고 관리자를 통해 해당 부품이 현지에 보관돼 있음을 알고 수사팀은 즉각 부산지검에 압수수색 영장을 요청했다. 하지만 영장이 나오기까지 이틀이 걸렸다. 그동안 밀수범들이 부품을 다시 빼갈 수도 있기에 부산세관 직원들이 방검복과 삼단봉, 가스총으로 무장한 뒤 밤새 잠복했다.

● 마약 단속의 시작은 ‘밀반입’ 차단

전문가들은 마약 단속에서는 밀반입 자체를 막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매년 마약류 밀반입은 늘고 있지만 국내외 운송 화물을 감시하는 세관 마약 단속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관세청 마약 단속 인원은 총 80명. 최근 마약 밀반입이 늘면서 지난해 초 35명에서 늘린 숫자다. 이에 비해 경찰과 검찰의 마약 수사 인원은 각각 1150명, 290명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마약 투약자를 검거하는 이상으로 마약 반입 자체를 원천 봉쇄해야 마약 청정국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