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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기막히게 교묘해진 보험사기

입력 2021-11-05 03:00업데이트 2021-11-0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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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기의 진화]〈上〉백내장 수술, 사실은 ‘생내장’ 수술
멀쩡한 눈 백내장 허위진단 후 시력교정수술… 필라테스 교습 도수치료 둔갑…
“실손의료보험만 있으면 큰돈 안 들이고 시력 교정을 할 수 있대.”

대전에 사는 40대 A 씨는 얼마 전 지인 B 씨의 말에 혹해 서울 강남구의 한 안과를 찾았다. 병원은 멀쩡한 A 씨의 눈을 백내장이라고 진단하고 1050만 원짜리 시력교정 수술을 해줬다. A 씨가 낸 돈은 단돈 8만 원. 진료비의 90%인 945만 원은 실손보험금에서 나왔고 97만 원은 B 씨가 내줬다.

알고 보니 B 씨는 실손보험 가입자와 안과를 연결해주는 브로커였다. 멀쩡한 눈을 백내장으로 진단해 보험금을 타내는 이른바 ‘생내장’ 보험사기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에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사람은 역대 최대 규모로 늘었다. 병원이 브로커를 고용해 조직적으로 사기를 벌이는가 하면 학생 주부 등이 가담한 생계형 보험사기도 늘고 있다.

○ ‘생내장’, ‘뒤쿵’ 등 보험사기 지능화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 인원은 9만8826명으로 2019년에 비해 6.8% 증가했다. 적발 금액도 8986억 원으로 2.0% 증가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병원 이용량과 자동차 운행량이 크게 줄었는데도 보험사기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A 씨가 수술 받은 안과는 브로커를 고용해 실손보험 가입자를 모집하고 멀쩡한 사람에게 백내장 수술을 하는 ‘생내장’ 병원이었다. 병원은 브로커를 실장, 팀장 등으로 나누고 환자 1명당 30만∼120만 원의 수수료를 줬다. 브로커는 인근 오피스텔에 숙박시설까지 마련해 환자들을 관리했다.

보험업계는 최근 백내장 수술이 급증한 원인을 이 같은 생내장 수술에서 찾고 있다. 지난해 백내장 수술에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7424억 원으로 2년 만에 155% 급증했다. 올해는 1조 원이 넘는 보험금이 백내장 수술에 지급될 것으로 추산된다.

미용 목적의 필라테스 교습을 ‘도수치료’로 둔갑시켜 보험금을 타내는 병원도 등장했다.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고의로 ‘뒤쿵’(차량을 뒤에서 쿵 받는다는 뜻) 사고를 유발하는 등 보험사기 수법도 지능화하고 있다.

○ 코로나19로 생계형 보험사기도 늘어
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나빠지면서 무직자 학생 등 일반인이 생계를 위해 보험사기에 뛰어드는 일도 늘고 있다. 지난해 직업별 보험사기 증가율은 학생(20.3%), 무직자(17.9%), 주부(7.2%) 등에서 높았다.

연령별로는 10대(18.0%)와 20대(18.9%) 증가율이 높아 보험사기 가담자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희경 생명보험협회 보험사기예방팀장은 “고액의 보험금을 노린 계획적 범죄보다 일반인이 가담하는 보험사기가 늘어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보험사기에 의한 허위·과잉진료는 의료사고를 유발하고 보험사의 손해를 키워 보험 가입자들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사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금융당국, 수사기관, 보험사 간의 정보 공유와 합동조사 등의 공조가 필수적”이라며 “이를 맡을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험사기로 적발되더라도 보험금을 회수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 금액의 환수율은 2.9%에 그쳤다. 현행법상 보험금을 환수하려면 보험사가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기 보험금을 회수하기 위한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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