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대출 경쟁’ 부른 상속세 대란…정부는 “완화 계획 없다”

뉴시스 입력 2021-05-02 07:29수정 2021-05-02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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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12조' 상속세 대출…은행, 특별 승인
최대 60%인 현행 상속세율 OECD 최고치
中企 위한 가업상속공제는 활용도 떨어져
"세율 너무 낮춰야" "승계 시 과세 미뤄야"
정부, '개선 방안' 연구…10월 결과 나올 듯
“여론 등 부담이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대출을 내줄 기회가 온다면 그 어느 은행이 마다하겠느냐.”

고(故)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유산에 과세된 상속세를 내기 위해 유족이 대출을 활용할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은행권에는 파란이 일었다. 일반 직장인 수천명에게 내줄 실적을 한 번에 쌓을 기회를 잡기 위해 각 시중은행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삼성가에서 대출 신청을 받은 시중은행은 특별 승인까지 해가며 대출을 내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가가 은행에 손을 벌린 이유는 12조원 이상의 대규모 상속세액이 매겨져서다. 고 이건희 전 회장의 유산은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SDS 등 계열사 주식 19조원어치와 감정가가 3조원에 이르는 미술품, 서울 용산구 자택, 경기 용인 처인구 에버랜드 부지 2조원어치 등 22조원가량인 것으로 재계는 추정하고 있다.

19조원어치 계열사 주식의 상속세액은 11조400억원가량이다. 여기에 미술품·부동산 몫을 더해 12조원가량을 내야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28일 “전체 유산의 절반이 넘는 12조원을 상속세로 낼 계획”이라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역대 최고 수준의 상속세 납부액이자, 지난해 정부가 거둔 상속세액의 3~4배에 이르는 규모”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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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고 구본무 전 LG 회장 유족에게는 9215억원의 상속세가, 고 신격호 전 롯데그룹 명예 회장 유족에게는 4500억원이,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유족에게는 2700억원이, 고 이수영 전 OCI 회장 유족에게는 2000억원이,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유족에게는 1830억원이, 고 함태호 전 오뚜기 명예 회장 유족에게는 1500억원이 과세된 바 있다.

현행 상속세제는 과세 표준액에 따라 10~50%의 세율을 적용한다. 과세 표준액이 1억원이면 10%의 세율을, 1억원 이상~5억원 미만이면 20%를, 5억원 이상~10억원 미만이면 30%를, 10억원 이상~30억원 미만이면 40%를, 30억원 이상이면 50%를 적용한다. 해당 재산이 ‘최대 주주에게 물려받는 주식’이면 평가액에 20%를 할증해 60%가 된다.

최대 주주 할증을 적용할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일본(55%)에 이어 2번째로 높다. 미국(40%)·독일(30%)·영국(20%) 등 서구권 국가는 20~40% 수준이다. 2018년 국내총생산(GDP)에서 상속·증여세가 차지한 비중도 한국은 0.41%로 일본(0.40%)·미국(0.10%)·독일(0.20%)·영국(0.25%)보다 크다.

부모가 일평생 일군 기업을 물려받는 후대의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존재하지만, 활용도는 낮다. 매출액 3000억원 이하의 중견·중소기업이어야 하고, 물려받은 사람이 7년 이상 해당 기업을 계속 경영해야 하며, 임직원 고용도 유지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2018년 기준 연평균 이용 건수는 84건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중견·중소기업 승계 과정에서 상속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경영권을 매각하는 사례도 나왔다. 국내 최대 콘돔 제조업체였던 ‘유니더스’가 대표적이다. 2015년 창업주 김덕성 회장이 별세하며 50억원이 넘는 상속세가 매겨졌다. 세금을 마련할 재간이 없던 김성훈 대표는 결국 2017년 지분 34.9%를 투자조합에 넘겼다.

대기업을 승계하려면 수천억~수조원의 상속세를 내야하고, 중소기업 승계자는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정부는 상속세제 완화에 미온적이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 차관은 지난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상속세율 인하는 별도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민간 전문가는 현행 상속세율이 너무 높다고 지적한다. 부모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많게는 50~60%의 세율을 매기는 것은 ‘징벌적’ 과세라는 평가다. 상속세율을 적용하는 과표 구간을 요즘 세태에 맞게 현실화하고, 기업을 승계하는 경우에는 그 지분 증권을 되팔 때까지 과세를 미뤄줘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는 뉴시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현행 상속세제상 최고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 30억원 기준은 과거의 것”이라면서 “10억원에 최고 세율이 매겨지는 소득세제와 비교할 때 30억원이라는 기준은 너무 낮다. 한국 경제 규모가 커진 점을 고려할 때 최고 과표 기준은 300억원은 돼야 한다”고 했다.

오문성 한양여자대학교 세무회계과 교수(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는 “현행 상속세율은 경영자가 사망한 것이 잘못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높다. 그야말로 가혹한 수준”이라면서 “경영권이 위협받는 일은 없도록 해줘야 한다. 최대 주주 주식 승계자가 그 지분 증권을 되팔 때까지 과세를 이연해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기재부는 지난달 말 현행 상속세제를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 연구 용역을 맡긴 상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요구에 따른 조치다. 기재위 의견에 따라 상속세제 전반의 개선 방안을 광범위하게 조사해야 해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언이다. 기재부는 9~10월께 연구 용역 결과를 받아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종=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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