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IT맨-실무전문가… 대기업 이사회 ‘얼굴’이 바뀐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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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의견 모아야 생산성 높여”… 남성-교수-법조인 중심서 변화
SK-LG 지주사에 첫 女사외이사… 벤처기업인들도 잇따라 영입
정몽구 회장 모비스 등기이사직… 1971년생 상무급 임원이 잇기로

남성 교수, 법조계 및 관료로 대표됐던 기업 이사회의 ‘얼굴’이 달라지고 있다. 여성 이사가 늘고 정보기술(IT) 업계 창업자가 전통 산업 기반 대기업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나이와 직급의 장벽을 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22일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주요 기업 주주총회 안건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다양성’이다. 기업들이 이사회 중심 경영을 확대하면서 다양한 배경, 실무 중심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이사를 적극 영입해 중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다음 달 시작되는 주주총회 시즌에서 SK, LG, 한화 등은 지주회사 이사회에 여성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할 예정이다. 그룹 전반을 다루는 이들 지주사 이사회에는 그간 여성 이사가 없었다. LG전자, 한화생명 및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대기업 계열사도 올해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 선임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기아차와 현대모비스도 주총 소집공고를 통해 사상 첫 여성 사외이사 선임을 안건으로 올린다고 밝혔다.

이는 내년 8월부터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상장법인은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시행되는 것이 직접적 이유다.

여성 임원이 늘어나는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개정안에는 처벌 조항이 없어 여성 사외이사를 두지 않아도 직접적인 불이익이 없고, 시행을 1년 6개월이나 앞두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급한 문제는 아니다”며 “하지만 기업 내 남아있는 ‘유리천장’이 다양성을 떨어뜨린다는 인식을 벗기 위해 변화를 서두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회에 벤처·스타트업 기업인, 외국인 영입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한화솔루션이 대표적이다. 한화솔루션은 3월 신임 사외이사로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를 선임할 계획이다. ‘연쇄 창업가’로 이름을 알린 이 대표가 신사업 발굴 및 육성 속도를 높여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한화솔루션은 지난해에도 시마 사토시 전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실장 등 외국인 2명을 사외이사로 영입해 눈길을 끌었다.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도 2018년 11년 만에 ㈜LG 사외이사로 컴백했다. 김 대표는 법조인 출신이지만 네이버에서 10년간 모바일, 인공지능(AI) 등 신사업을 맡았고 네이버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스타트업 업계의 경영 자문을 해왔다. 이런 김 대표를 영입해 LG의 신성장동력 발굴에 힘을 싣는 전략이라는 평이 나왔다.

재계에서는 IT 벤처기업 출신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있다고 본다. 이한주 대표를 비롯해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 스타트업 업계 1세대 창업가들은 23일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단에도 대거 포함됐다.

직급을 파괴하고 ‘실무 중심의 전문성’을 우선 요소로 두기도 한다. 현대모비스는 3월 말 열리는 주총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맡아 왔던 등기이사직 바통을 1971년생 상무급 임원인 고영석 연구개발(R&D) 기획운영실장에게 넘길 예정이다. 현대모비스가 상무급 임원을 사내이사로 추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고 실장이 자동차부품 업계에서 쌓아온 전문성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 기업의 경우 투자 혹은 협업 여부를 결정할 때 상대 기업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 등 비재무적 요소도 핵심적 고려 대상으로 삼는다”며 “주요 기업들이 여성, 외국인, IT 관련 인물들을 이사회에 영입하는 것은 다양한 의견을 모으는 것을 넘어 조직의 효율성, 생산성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일 dong@donga.com·곽도영 기자
#여성-it맨#실무전문가#대기업 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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