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건희 회장, 화성사업장서 마지막 인사…‘반도체 신화 출발점’

서동일기자 입력 2020-10-28 19:52수정 2020-10-2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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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태운 운구차량은 28일 오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출발점인 경기 화성사업장을 둘러본 뒤에야 장지로 향했다. 이곳은 이 회장이 생전 가장 애착을 쏟았던 장소였다.

화성사업장 곳곳에는 ‘회장님의 발자취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반도체 100년을 향한 힘찬 도약을 회장님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반도체 신화 창조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자랑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초석을 닦았다. 1974년 이 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심했을 당시 삼성 경영진은 “TV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반도체를 만든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라며 반대했지만 이 회장은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이 회장은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선진국과 경쟁하려면 ‘머리’를 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기술산업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본 이 회장 눈에 띈 사업이 반도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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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젊은 세대에게 심어주고 싶어 했다”며 “미국, 일본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반도체 산업이야말로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 진출 초기 전문 인력과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거의 매주 일본을 오가며 반도체 기술자를 만났다. 현직 일본 기술자를 주말에 몰래 한국으로 모셔와 직원을 교육시킨 적도 많았다.

이 회장은 종종 반도체 산업의 핵심을 ‘타이밍’이라 표현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 수조 원에 이르는 선행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사업에서 최적의 투자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피를 말리는 고통이 뒤 따른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했다.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순간은 경기 용인시 기흥구 반도체사업장에 8인치 웨이퍼 양산 라인 도입을 결정하던 1993년이었다. 당시 반도체 웨이퍼는 6인치가 표준이었다. 8인치를 택하면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지만 기술적 부담이 컸기 때문에 경쟁사 모두 머뭇거리던 때였다.

한 번의 실패로 수 조 원 이상의 자금을 허공에 날릴 수도 있었다. 이 회장은 ‘머뭇거리면 영원히 기술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 믿었던 것이다.

결국 이 선택으로 삼성전자는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 1위 기업이 될 수 있었다. 일본 도시바 등과 기술력은 비슷했지만 생산력에서 앞선 삼성전자는 1993년 10월 메모리 시장 1위에 올라섰다. 이 회장은 당시 삼성전자 최고경영진과 임직원들에게 이 같이 말했다.

“목표를 뒤쫓아 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세계의 리더가 되면 목표를 자신이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리더의 자리는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치열한 고민과 경험을 바탕으로 임직원들에게 한 당부였지만 이 회장 스스로를 다지는 말이기도 했다.

서동일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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