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금융상품 쏟아지는데… 노인은 ‘그림의 떡’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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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고령층 ‘비대면 금융 소외’ 가속화

“신문에서 본 자동차보험 상품인데 영업점이 없어서…. 며느리 차에 가입해 주고 싶은데 가입 방법을 모르겠네요.”

올 7월 서울 중구 디지털손해보험사인 캐롯손해보험 본사에 찾아온 70대 A 씨는 직원들을 붙들고 이 회사가 내놓은 ‘퍼마일 자동차보험’ 가입 방법을 문의했다. 모바일과 온라인으로만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인데,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지 않은 A 씨는 설계사를 찾아 본사까지 온 것이다. 캐롯손보 관계자는 “스마트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들이 디지털 금융상품 가입 방법을 몰라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가입하는 일이 생긴다”며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가입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적극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은행 영업점이 줄고 디지털과 인터넷 전용 금융상품이 늘어나는 디지털 금융 시대로 전환되면서 고령층의 ‘디지털 금융 소외’가 심화하고 있다. 디지털 금융 소외 계층을 위한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고금리 상품도, 은행 점포도 접근 어려워

지난달 말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는 아파트 소유자를 대상으로 연 1.6%대의 초저금리 비대면 주택담보대출을 1000명 한정 상품으로 내놨다. 신청자만 2만6458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신청자 중 50대 이상은 13%에 그쳤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인터넷과 모바일 등 비대면 환경에 익숙한 30, 40대가 주 고객층”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카카오뱅크 특별판매 연 5% 정기예금 가입자 중에서도 60대 이상은 0.1%에 불과했다.

일반 시중은행에서도 디지털 금융 소외 현상이 확인된다. 올 2월 하나은행이 판매한 연 5% 고금리 적금은 136만 계좌가 가입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가입자 중 60, 70대의 비율은 각각 6.4%와 1.8%에 불과했다. 온라인으로 상품 마케팅을 하다 보니 20∼40대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디지털 금융의 문턱을 넘지 못한 고령층이 찾아갈 은행 점포는 해마다 줄고 있다. 올 6월 국내 은행 영업점 수는 6526곳으로, 2018년보다 약 230곳 감소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영업점을 줄이고 디지털로 전환해 비용을 절감해야 이자를 더 주는 상품을 개발할 수 있고 고객을 지속적으로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고령층 소외는 ‘경제적 학대’, 보완 대책 필요”

금융당국도 최근 ‘고령 친화 금융환경 조성 방안’을 내놓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은행들이 오프라인 점포를 닫을 때 외부 전문가가 참여해 타당성을 검토하고 폐쇄 3개월 전 고객에게 사전 통지하도록 했다. 우체국과 은행의 창구업무 제휴를 강화하고 온·오프라인 동일·유사상품 판매 등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 전문가 참여는 영업 비밀 누설 등의 우려가 있고, 우체국과의 업무 제휴는 시스템 구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제시한 소비자보호실태평가 가점 정도로는 금융사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시행 시기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외부 인사 참여에 따른 영업 비밀 누설 등 금융사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과 금융사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유인책을 후속 대책으로 내놔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체국과 은행 제휴 등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고령자 친화 점포 등의 보완책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융시민단체인 희망만드는사람들의 김희철 대표는 “미국의 경우 금융사가 은퇴한 고령층이 일하는 고령층 전담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며 “선진국을 중심으로 고령층의 금융 소외를 ‘경제적 학대’로 인식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본다”고 말했다.

김동혁 hack@donga.com·장윤정·박희창 기자
#온라인#금융상품#노인#고령층#비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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