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보부상’이라고 불리는 방문판매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찾아내고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인 정옥순
씨(왼쪽 사진)는 “바쁜 직장인들의 온라인 주문이 늘었다”고 했다. ‘아모레퍼시픽 카운슬러’인 정현정 씨는 “디지털의 발전이
영업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정(情)을 고객 관리의 기본으로 꼽았다. 김재명
base@donga.com·양회성 기자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3년째 ‘야쿠르트 아줌마’로 일하고 있는 정옥순 씨(36·여)는 “모바일로 주문이 많이 들어와 수입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했다. 정 씨는 “소비자가 배달 가능 시간에 맞춰 주문하기 때문에, 판매원들도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배달하는 장점이 생겼다”고도 했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가 예상하는 올해 모바일 쇼핑 시장 규모는 42조5000억 원. 지난해보다 19.5%가 늘어난 규모다. 그러나 모바일쇼핑의 가파른 성장 속에서 여전히 ‘방문판매’가 위력을 떨치는 사업이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와 ‘아모레 아줌마’다.
한국야쿠르트는 1만3000여 명, 아모레퍼시픽은 3만6000명의 방문판매원을 운용하고 있다. 사실 이들 방문판매의 힘이 꺾이지 않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했던 모바일을 충분히 이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만나는 방문판매의 핵심을 모바일 환경에 맞게 구현했다는 의미다.
16일 한국야쿠르트에 따르면 7월부터 전국 판매를 시작한 이 회사의 가정간편식(HMR) 브랜드 ‘잇츠온’은 3개월간 누적 45억 원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잇츠온의 올해 매출액 목표는 100억 원이었다. 시장 진입 초기 시범 판매 등으로 초반 매출액이 폭발적이진 않지만 판매 메뉴가 추가로 늘어나고 있어 목표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회사는 보고 있다.
강자들이 이미 자리를 잡은 HMR 시장에서 후발 주자인 잇츠온이 시장에 안착한 것은 한국야쿠르트의 방문판매 경쟁력 덕분이다. 잇츠온은 대형마트, 소매점 등 오프라인 매장에 들어가지 않고 100% 방문판매 채널로만 팔린다. 전국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로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다.
방문판매는 전통적으로 본보기 상품을 미리 나눠주거나 전단과 명함을 돌리는 방식으로 영업해 왔다. 지금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이 그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다. 모바일 덕에 2번 방문해야 하는 것을 1번만 하면 되는 것이다. 14년차 경력의 야쿠르트 아줌마 엄윤미 씨(50·여)는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주문 수량만큼만 결제하니 편리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야쿠르트는 기존의 홈페이지와 쇼핑몰을 하나로 통합해 올 1월 ‘하이프레시(hyFresh)’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하이프레시 앱의 1∼9월 누적 다운로드 수는 54만여 건이다. 홈페이지와 모바일을 통한 올해 누적 매출액은 59억 원. 지난해 온라인 매출액인 41억 원을 일찌감치 넘었다. 잇츠온 브랜드 출시 효과다.
백화점, 면세점 등 다양한 곳에서 팔리는 화장품도 방문판매는 여전히 핵심 유통채널이다. 1964년 방문판매 제도를 도입한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 3월 만든 앱 ‘뷰티Q’를 통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앱을 통해 ‘카운슬러(방문판매 사원) 찾기’가 가능해 신규 고객이 필요한 상품을 주문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방문판매 고객 중 37%가 뷰티Q를 이용한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사업부문의 매출 중 방문판매 비중은 12%다. 1990년대 이 비중이 30%가 넘는 때도 있었지만 면세점, 전자상거래를 통한 판매가 두드러지면서 비중이 감소했다. 하지만 매출액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2008년 5000억 원대였던 방문판매 매출액은 지난해 6000억 원 이상이었다.
11년 넘게 카운슬러로 일해 온 정현정 씨(45·여)는 “일을 시작했을 때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 본보기 제품을 다 돌린 적도 있었지만 이젠 모바일 덕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모바일 환경이 방문판매의 유지를 돕고 있지만 방문판매가 건재할 수 있는 이유로는 ‘정(情)’도 무시할 수 없다. 정 씨는 “방문판매는 물건 판매뿐 아니라 고객에게 어울리는 메이크업을 해주고 개인적인 일을 상담해 주는 과정도 포함한다. 이건 디지털 기술이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방문판매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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