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이 창업 인큐베이터”… 이스라엘 자체가 스타트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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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일자리를!]‘벤처기업의 요람’ 가보니


“군대에서 배운 기술이 모두 기밀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를 활용하는 능력은 개인의 자산이라고 가르칩니다.”

연간 1400여 개씩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수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나는 ‘창업국가’ 이스라엘의 성공 비결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많은 창업자가 군 경험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지난달 30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에 위치한 사이버 보안전문가 육성 기업 ‘팀8(Team8)’ 본사에서 만난 이 회사 나다브 자프리르 회장(47)도 예비역 준장 출신. 군에서 동료들과 협력하는 법과 정보기술(IT)을 배워 창업에 성공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의 오랜 분쟁과 테러 위기, 좁은 내수시장,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기업이 성장하기 불리한 환경일 것 같지만 오히려 위기에서 기회를 찾아내 창업국가로 불리고 있다. 군대가 인재를 길러내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맡고, 정부가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과감하게 투자하면서 스타트업 육성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군 경험이 창업과 일자리 기회로

1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무역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사이버 보안 콘퍼런스 현장. 유력 벤처 투자사인 JVP 부스에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몰려 투자받는 방법 등을 문의하고 있다. 텔아비브=임현석 기자 lhs@donga.com
1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무역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사이버 보안 콘퍼런스 현장. 유력 벤처 투자사인 JVP 부스에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몰려 투자받는 방법 등을 문의하고 있다. 텔아비브=임현석 기자 lhs@donga.com

팀8의 자프리르 회장은 1980년대 말 여느 18세 이스라엘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의무복무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의무복무를 마친 뒤에는 이스라엘의 사이버 첩보부대인 8200부대에서 근무하면서 최정예 요원으로 중동과의 사이버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전역한 편이지만 재취업 걱정은 없었다. 군에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주저 없이 창업에 나섰기 때문. 팀8은 사이버 보안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전역 군인들이 창업하는 다른 사이버 보안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이날 팀8 본사 건물에는 180여 명의 직원이 분주하게 근무하고 있었다. 올해만 100여 명을 더 뽑을 예정이다. 정보부대라는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 셈이다.

이스라엘 하데라 시에 위치한 사이버 보안 훈련장인 ‘사이버짐’도 군 경험을 토대로 2012년 창업한 기업이다. 사이버짐을 창업한 오피르 하손 사장 역시 이스라엘군 정보부대에서 근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사이버짐은 각종 금융기관이나 발전소 등 기간산업, 통신사업자 등이 운영 중인 시스템의 가상환경을 구현하고 있다. 여기서 실제로 어떤 해킹이 가능한지 공격팀과 방어팀으로 나눠 훈련이 가능하다. 사이버 보안 대책을 기업이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고안한 모의훈련 프로그램인 셈이다.

하손 사장도 “군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창업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사이버짐은 국가정보보안국(NISA)에서 근무했던 보안전문가들과 해커를 100명 가까이 채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군 경험이 자연스럽게 스타트업에 녹아들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뿐더러 사이버 보안 특성화라는 이스라엘만의 산업 강점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 척박한 환경에서 경제 실마리 찾아

올해 현재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수는 60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기술인력만 약 28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양질의 일자리인 만큼 만족도도 높을 수밖에 없다.

사이버 보안 등 하이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스타트업 육성에 성공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들과의 군사적 긴장 때문에 국방 관련 기술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보통신기술에 투자한 점이 주효했다.

일반병을 포함해 5000여 명이 근무하는 8200부대의 경우 전역한 후 해커병에서 기술 엔지니어로 나서는 사례가 많다. 1996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보안업체 체크포인트가 대표적이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창업 육성 계획을 담당하는 경제부 산하 수석과학관실(OCS·Office of Chief Scientist)은 체크포인트 등 군부대 출신이 차린 보안업체만 400여 개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곳서 근무하는 보안 일자리만 8000여 개에 이른다.

경제부 산하 수석과학관실은 박사급 기술가치 평가사, 해외 벤처캐피털 투자심사역 출신들이 모여 투자기업을 선별하고 이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점도 돋보인다. 수석과학관실 관계자는 “정부는 투자를 하지만 기업의 자율성을 철저하게 존중한다. 내수시장이 작은 이스라엘의 특성상 해외 진출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기업인이 창업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회사가 80여 개나 되는 배경이다.

텔아비브=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스타트업#창업#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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