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둔 4일 서울 A전통시장. 폭이 2m밖에 안 되는 좁은 길을 따라 줄지어 들어선 수백 개의 작은 가게와 노점에는 고추와 오이, 더덕, 두릅 등 다양한 채소가 진열돼 있었다. 기자가 나타나자 일부 노점 상인이 ‘유기농’이라고 적힌 종이 푯말을 들어 보이며 호객행위를 했다. 채소를 판매하는 노점 10곳 중 3, 4곳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표기법에 따르지 않고 유기농 푯말을 사용했다. 가게 안과 좌판 주변 어느 곳을 둘러봐도 친환경 농산물 판매상임을 인증하는 거래명세서나 보증서를 찾을 수 없었다. 친환경 농산물 재배 농가로부터 공급받은 농산물이 아니면 푯말에 ‘유기농’ 또는 ‘무농약’, ‘무공해’라고 표시해 판매할 수 없다.
○ “유기농, 친환경 보증서 꼭 확인해야”
유기농 농산물 인증 표시1일 서울 B전통시장. 떡집 주인 송모 씨(45)는 추석 차례상에 올릴 떡을 빚는 데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단골 가게를 찾았다. 가게 주인 권모 씨(55)는 유기농이라며 팥 40kg을 28만 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바로 옆 가게에서 파는 일반 팥보다 3만 원 비쌌다. 송 씨가 팥을 사려는 순간 경찰이 가게로 들이닥쳤다. 경찰은 “유기농 팥으로 속여 판다는 주변 상인의 제보를 받고 나왔다”고 말했다. 권 씨는 “중국에서 밀수한 팥을 팔았다”며 순순히 자백했다.
추석을 맞아 경찰이 허위·과장광고, 원산지 허위 표시 등 불량음식을 근절하기 위해 특별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서울시내 대형 전통시장 5곳을 돌아보니 가짜 유기농, 친환경, 무농약 농산물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가짜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한 혐의로 처벌 받은 건수는 2014년 101건에서 지난해 117건으로 늘었다. 올 상반기에만 85건이 적발됐다. 매출액이 월 500만 원 이하인 영세상은 통계에 포함되지 않아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엔 잘 지키다가도 명절 대목을 노리고 가짜 친환경 농산물을 파는 상인이 늘어난다”고 전했다. 유기농 푯말에 친환경 재배 농가의 이름과 인증번호가 없다면 일단 ‘가짜’로 의심해야 한다는 게 경찰의 조언이다.
○ 단속 나서도 처벌 쉽지 않아
현장 경찰은 가짜 유기농 농산물을 파는 상인을 적발해도 처벌하기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 관계자는 “상인 대부분이 수십 년을 시장 좌판에서 농산물을 판 연세 많은 분들이라 처벌하기가 난감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 계도 조치로 끝난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10월 검찰은 가짜 친환경 제품을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로 유통 및 판매한 13개 업체를 적발했다. 외국산을 국내산으로 속여 판매하는 사례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지난달 8일 원산지 불명의 콩으로 콩국물을 제조해 판매한 업자를 검거했다. 지난해 원산지나 유통기한을 거짓 표기해 적발된 사례가 무려 8437건이나 됐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 변기수 수사5팀장은 “명절에 국내산으로 표기해 일주일만 판매해도 1억∼2억 원을 쉽게 벌 수 있기 때문에 정직한 판매업자들도 명절 특수에는 수입한 농축산물을 국내산으로 속여 파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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