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 1일 포항제철(현 포스코) 포항제철소 1기 착공식에서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과 박정희 대통령, 김학렬 부총리(왼쪽부터)가 착공 버튼을 누르고 있다. 포스코그룹 제공
국내에서 종합제철소 건설 계획이 구체화된 것은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부터다. 국내 첫 일관제철소인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건설되기 전 국내 철강산업은 거의 전무(全無)했다. 당시 정부는 철강산업을 다른 산업에 기초 소재를 제공하는 산업으로, 빈곤에서 탈피하고 자립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제일 먼저 기초를 다져야 할 필수 산업으로 인식했다.
포스코의 일관제철소 건설은 자본, 기술, 경험, 자원 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양질의 철강재를 생산해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한다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의지로 시작됐다. 1970년 4월 1일 조강 연산 103만 t 규모의 1기 설비가 착공됐다.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통상 건설에 4, 5년 걸리는 제철소를 포스코는 3년 만에 해냈다. 따라서 1기 건설에 소요된 투자비도 통상 t당 500달러에서 260달러로 줄었다. 1973년 6월 9일엔 국내 최초의 용광로를 준공해 첫 쇳물을 생산하게 됐다. 포항제철소는 포스코가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회사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포항제철소 1기 설비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성공적인 제철소 건설에 고무돼 조강 연산 1000만 t 규모의 제2제철소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포스코인들은 국내 건설 사상 초유인 ‘바다 위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해 겨울 바다의 험한 파도, 매서운 바람과 싸웠다. 그 결과 포스코는 1992년 10월 2일 광양제철소를 준공했다. 세계 최대 단일 제철소였다.
광양제철소 준공으로 포항제철소는 고급강 위주 다품종 소량 생산에 치중하고, 광양제철소는 열연 및 냉연 제품 위주의 소품종 대량 생산에 주력할 수 있게 됐다. 제철소별 특성에 맞는 제품 구성을 통해 포스코는 인력과 비용 등 생산원가를 절감하면서 설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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