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빈터만… 1970년 준공된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중산시범아파트 뒤로 개발이 무산된 용산국제업무지구 용지가 보인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서부이촌동이 2007년 용산국제업무지구에 포함된 후 작년 9월 지구에서 해제되기까지 만 6년여 동안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기자 양반, 용산 개발 얘기 그만 하쇼. 주민들 놀리는 것도 아니고….”(김모 씨·52·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22년 거주)
“문의는 확실히 늘고 있어요. 호가도 1000만∼2000만 원씩 올라가는 상태고요.”(서부이촌동 E공인중개업소 관계자)
‘꺼진 불’인 줄 알았던 용산개발 사업이 6·4 지방단체장 선거 바람을 타고 다시 주목받고 있다.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몽준 의원이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을 재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다. 얼어붙었던 부동산시장이 풀리는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의 사장은 “서울 수도권 일대에 대형 개발사업을 벌일 만한 곳이 사실상 용산밖에 없어 디벨로퍼(부동산개발업자)를 비롯해 주변인들이 용산 사업 참여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상점들 모두 비어…‘죽은 거리’
지난달 31일 오후에 찾은 서부이촌동 일대 아파트들의 외벽에는 ‘국제업무단지 만들어서 무슨 영화 누리는가’ ‘통합개발 결사반대 투쟁’ 등 용산 개발에 반대하는 글귀가 지워지지 않은 채 쓰여 있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당초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소유한 철도정비창과 서부이촌동을 합쳐 총 51만8700m² 용지에 152층짜리 대형빌딩 등 복합단지를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사업비만 31조 원으로 ‘단군 이래 최대 개발’로 불렸다. 하지만 사업 시행사가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졌고 코레일은 땅값 등을 돌려주며 사업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현재 사업 무산 책임을 가리는 대규모 소송전이 벌어져 있는 상황이다.
사업 대상지에 포함돼 2011년 폐쇄됐던 서울 우편집중국 주변에는 건물을 가린 철제 펜스가 삼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아파트 건물들은 을씨년스러웠다. 공인중개업소, 인테리어업체, 열쇠가게 등 상점들은 내부를 모두 비운 채 문을 잠가 ‘죽은 거리’처럼 보였다.
다시 부상한 용산 개발사업의 재추진 가능성을 놓고 반응은 엇갈렸다. 개발이 진행되며 만 6년여간 재산권 행사를 못했던 이곳 주민들은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주민 최모 씨(53·여)는 “주민들은 분리 개발이든, 통합 개발이든 사업이 추진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걸린 소송도 많고 대규모 개발사업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지 알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다시 거래가 시작되고 있다”
코레일은 소송전이 잘 마무리돼 땅을 완전히 되찾으면 서부이촌동과 전체 사업지구의 70%에 이르는 철도정비창 터(35만6400m²)를 분리해 개발하거나 혹은 역세권만 직접 개발하고 나머지 땅(30만 m²)은 민간에 매각해 진행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정 의원은 “타당성과 경제성을 토대로 방법을 찾겠다”며 통합 개발하되 단계별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업 재추진에 부정적이다.
상황이 복잡하지만 ‘거래 절벽’에 내몰렸던 일대 부동산시장은 회복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한때 실거래가가 9억 원을 넘어섰던 전용 59m² 대림아파트의 호가는 현재 5억5000만 원 수준. 1월에는 4억8500만 원에 급매물이 거래되기도 했지만 집주인이 내놨던 물건을 거둬들이면서 호가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임현택 베스트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작성하고 있던 중산아파트(1970년 준공) 전용 54m² 매매계약서를 보여주며 “다시 거래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매수 문의가 전혀 없다가 최근 들어 5, 6건씩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 그는 “어떤 아파트는 호가가 5%가량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 재추진 가능성이 부각되자 디벨로퍼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지난달 중국 녹지그룹이 땅값 4조2000억 원을 제안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강경철 코레일 용산사업단총괄처장은 “아직 본격적으로 제안해 온 곳은 없지만 외국계 개발업자들까지 사업 재개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발을 재추진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사업 무산의 책임과 용지 소유권을 둘러싼 소송이 최소 2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 경기가 대규모 개발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상승할지도 미지수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서울 도심에서도 손꼽히는 중심에 있다 보니 시행사들도 관심이 많다”면서 “다만 땅값이 강남권과 비슷한 데다 아직은 공약 차원이라 현실적으로 당장 땅을 사겠다고 나서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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