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중국 상하이 황푸 강변에서 젊은이들이 KT와 차이나모바일이 공동으로 제공하는 로밍 서비스를 활용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다. KT는 중국의 ICT 산업에 적극 투자하고, 특히 가상재화 유통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KT 제공
통신 분야는 글로벌시장 진출이 가장 까다로운 산업으로 통한다. 해당 국가의 핵심자원인 전파를 근간으로 삼는 대표적인 규제산업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국내 통신사들이 그동안 해외시장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국내를 대표하는 유무선 종합통신기업 KT가 ‘통신업종=전통적 내수 산업’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7월, KT는 2015년 매출 목표 40조 원 가운데 약 10%인 3조9000억 원을 글로벌 시장에서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비전을 세웠다. 무엇보다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하지만 중국 진출 방식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KT는 성장의 정체를 맞은 통신시장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탈(脫)통신’이란 큰 그림을 먼저 그렸다.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른 음악, 게임 등 가상재화(Virtual Goods) 시장의 유통사업에 뛰어들어 중국 ICT 산업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아프리카 르완다와 같은 신흥시장에 1500억 원을 투자해 롱텀에볼루션(LTE) 네트워크를 직접 설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방식의 접근인 셈이다.
급성장하는 중국 ICT 산업과 적극 협력
중국 ICT 시장의 위력은 지갑이 두툼해진 13억 명의 내수 소비자들로부터 나온다. 중국은 이미 이동통신 가입자, 스마트폰 판매량, 인터넷TV(IPTV) 이용자 부문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올해 중국의 ICT 산업 규모가 420조 원 이상으로 한국 시장의 5.5배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는 삼망(통신+방송+인터넷) 융합, 알뜰폰(MVNO), LTE 상용화를 통한 스마트혁명 등 중국 ICT 생태계의 변화가 예고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2∼3년 전 시장 환경과 흡사해 국내 기업에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중국 통신시장은 외국 기업에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엄격한 정부 규제는 물론이고 복잡한 행정절차와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소극적인 처벌로 일반적인 투자 행태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특히 중국 이동통신 시장은 차이나모바일, 차이나유니콤, 차이나텔레콤 등 3개 국영기업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KT는 중국 시장에서 통신뿐 아니라 가상재화, 금융, 유통 등 다양한 분야의 진출을 준비하면서 중국 기업과의 경쟁이 아닌 협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중국보다 먼저 ICT 혁명을 겪은 경험을 전파해 현지 파트너들과 함께 번영할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KT는 7억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세계 최대 통신사업자인 차이나모바일의 끈끈한 ‘관시(關係)’ 구축에 나섰다.
KT와 차이나모바일의 인연은 2010년 11월, 주요 20개국(G20)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한 왕젠저우(王建宙) 전 회장과 이석채 KT 회장 간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두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스마트폰 보급 확대 및 데이터 폭증에 따른 한중 통신기업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전략적 제휴에 뜻을 모았다. 당시 양사는 양해각서(MOU)를 통해 △한중 와이파이(Wi-Fi) 로밍 △글로벌 슈퍼앱스토어 플랫폼 △차세대 네트워크 및 차세대 스마트폰 △기 기간(M2M) 통신솔루션 △글로벌시장 공동 진출 등 광범위한 협력체제 구축을 약속했다.
수많은 사업 제안 가운데 KT는 음악, 게임, 교육콘텐츠 등 스마트폰을 통해 소비할 수 있는 가상재화 플랫폼 사업에 주목했다. 세계 통신환경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탈통신의 흐름이 머잖아 중국에도 찾아온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례를 보더라도 중국 통신사들이 ICT 산업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면 구글, 애플보다 먼저 자국의 콘텐츠 유통시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결과가 2011년 KT 주도로 만든 한중일 앱(응용프로그램) 교류장터이자 가상공간 자유무역지대인 오아시스(OASIS·One Asia Super Inter Store)다. 한층 새로워진 공동 앱 장터는 동아시아 3국에서 개발한 앱과 게임 등을 통신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오아시스가 성공하면 적어도 동아시아 7억 명의 이동통신 사용자들은 쉽고 경제적으로 가상재화 공동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
KT의 자체 앱 장터인 ‘올레마켓’은 현재 오아시스 플랫폼을 통해 차이나모바일의 앱 마켓인 ‘모바일 마켓’에 입점해 있다. 한국의 중소 콘텐츠 기업들이 중국으로 확장할 수 있는 유통채널을 확보한 셈이다. 실제 35개 오아시스 협력사와 400여 개의 앱이 한국과 중국 콘텐츠 시장에 동시에 진출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돈독해진 신뢰로 다양한 사업 성과 기대
KT와 차이나모바일의 공조가 당장 눈앞의 수익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가닥을 잡자 현안 해결도 한층 빨라졌다.
지난해 10월에는 시궈화(奚國華) 차이나모바일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이 회장과 한중 통신사업의 전략적 협력 방안을 깊이 있게 논의했다. KT의 저력을 확인한 시 회장은 KT의 네트워크 운영 노하우 공유, LTE 로밍, 오아시스, 근거리무선통신(NFC) 사업 등에서 적극적인 협력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자연스럽게 전통적 협조관계인 통신 분야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로밍 서비스 확대에도 양사는 투자를 늘려 활발한 교류에 대비하고 있다. 2월 두 회사 간 선불 로밍 서비스가 시작됐고, 3월에는 한중 NFC 로밍 쿠폰서비스도 선보였다. 머지않아 양국 간의 LTE 네트워크도 상호 소통할 수 있게 된다.
KT는 일반 소비자 대상 서비스에 머물지 않고 차이나모바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국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한 기업 간 거래(B2B) 사업도 늘리고 있다.
KT차이나를 통해서도 시스템구축(SI), 스마트시티, 솔루션 등 중국 ICT 산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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