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현지 15달러 와인이 한국서도 비슷한 가격… 진짜? 어떻게?

  • 동아일보

오리건 주 와인 판매가격 쑥 낮춘 이마트의 혁신

美 유니언 와인의 ‘언더우드’ 생산지



이마트의 수입 와인 판매가 다이어트는 발품을 판 결과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 유니언 와인의 포도밭에서 신근중 이마트 주류담당 바이어(왼쪽)가 라이언 함스 유니언 와인 사장과 함께 포도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숙성 중인 와인도 시음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포틀랜드=권기범 기자 kaki@donga.com·이마트 제공
美 유니언 와인의 ‘언더우드’ 생산지 이마트의 수입 와인 판매가 다이어트는 발품을 판 결과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 유니언 와인의 포도밭에서 신근중 이마트 주류담당 바이어(왼쪽)가 라이언 함스 유니언 와인 사장과 함께 포도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숙성 중인 와인도 시음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포틀랜드=권기범 기자 kaki@donga.com·이마트 제공
12일(현지 시간) 미국 서부 오리건 주 포틀랜드 외곽의 시골 마을 셔우드. 18만6155m²(약 5만6312평)에 이르는 경사진 땅에 무릎 높이의 포도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다. 한쪽에선 인부 3명이 포도나무 윗부분의 가지를 아래쪽으로 당겨 지지대에 묶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와인 생산업체 ‘유니언 와인’의 농장이다.

농장 한가운데에 꽂혀 있는 커다란 깃발 두 개가 눈에 띄었다. 하나는 ‘유니언 와인’, 다른 하나는 한국의 ‘이마트’ 깃발이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곳에 한국 유통업체의 깃발이 꽂혀 있는 이유는 이마트가 이들의 ‘큰 손님’이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유니언 와인과 손잡고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 브랜드 ‘언더우드’를 21일 한국 시장에 선보인다. 국내 판매가격(1만8000원 예정)이 미국 현지 판매 가격(15달러·1만6650원)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수입와인의 국내 판매가격은 현지 가격의 2∼2.7배에 이른다. 이번에 이마트가 국내 최초로 현지 가격 수준으로 와인을 판매하는 것은 뼈를 깎는 원가 절감 노력에 한국인 특유의 발품과 협상력이 더해진 결과다.

○ ‘깎고 또 깎아’ 현지가격에 도전

신근중 이마트 주류담당 바이어는 “미국 와인을 현지 판매가격에 가깝게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은 ‘박리다매’ 원칙 덕분”이라고 말했다. 신 바이어는 우선 와인 양조장과 계약하면서 대규모 물량을 제시해 병당 단가를 낮췄다. 와인 전문 수입상을 통해 소량으로 와인을 들여오던 방식을 탈피했다. 직접 양조장과 계약하면서 유통 마진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오리건 주의 와인은 ‘품질과 가격’이라는 기준을 모두 만족하는 유일한 제품이었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피노 누아 품종은 ‘와인의 종착역’이라고 불린다. 여러 포도 품종의 와인을 거쳐 언젠가는 피노 누아 와인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피노 누아가 잘 자라는 지역은 세계적으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과 뉴질랜드, 미국 오리건 주 정도다. 이 중에서도 오리건 주는 우리나라와 상대적으로 가까워 운송비용을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신 바이어는 “대형업체가 많이 진출하지 않은 새로운 시장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유통 마진을 줄이는 과정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수준’이었다. 대량 구매를 내세워 유니언 와인에서 공급 받는 가격을 10% 줄였다. 유니언 와인 측은 “판매량에 따라 마케팅 비용을 이마트에 제공하는 식으로 가격을 순차적으로 인하하자”고 제안했지만 이마트는 거절했다. 그렇게 하면 이마트의 수익은 늘어날 수 있지만 미국 현지 가격 도전이라는 목적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한 관세 인하 효과까지 병당 3000원을 줄일 수 있었다.

이후 수입 및 유통 과정에서 5000∼6000원을 절감했다. 외부 수입사가 아닌 신세계 L&B를 통해 수입하면서 마진과 창고 보관비용 등을 줄였다. 운송비용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포틀랜드항 대신 선적료가 싼 워싱턴 주의 터코마 항을 따로 섭외했다. 이마트의 자체 마진도 줄였다. 그 결과 당초 3만1000여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던 가격은 1만8000원까지 낮아졌다.

○ 오리건 주에 부는 ‘유통 한류’

신 바이어가 ‘와인 현지가격 도전’이라는 프로젝트에 도전하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경이다. 국내 유통업계에선 지난해 3월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 1년 내내 수입산 와인의 가격 경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신 바이어는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와인을 찾기 위해 신세계 L&B의 무역 담당자들과 함께 정부기관, 해외 잡지, 현지 와인협회와 매장 등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 와인 전문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오리건 주의 피노 누아 와인과 관련한 특집 기사를 발견했다.

담당자들이 바로 오리건 주 농무부 관계자와 지인들에게 전화해 현지 매장에서 판매 실적이 좋은 제품을 수소문하여 10개 후보를 선정했다. 그중 이마트의 물량을 감당할 수 있는 4곳을 다시 추렸다. 마지막으로 신 바이어가 네 곳의 와인 양조장을 찾아 맛을 비교했고, 그중에서도 과일향이 나고 떫은맛이 덜한 유니언 와인의 ‘언더우드’를 최종 낙점했다.

이마트의 공격적인 전략은 오리건 주 현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가족 단위의 소규모 와인 양조장를 운영했던 사람들에게 컨테이너 단위(컨테이너당 약 1만2000병)로 와인을 주문하는 이마트의 수입 규모는 충격에 가까웠다. 유니언 와인 측은 이미 2차 계약 체결을 위해 몸이 달았다. 라이언 함스 유니언 와인 사장은 “사업 규모 확장을 위해서 새로운 시장을 찾던 중 이마트에서 대형 계약 제의가 와서 직원들 모두 흥분한 상태”라고 말했다.

오리건 주 정부 관계자들도 들뜬 것은 마찬가지다. 농무부 국제무역부 담당자들은 아예 한국 바이어를 위해 한글 명함까지 새로 만들었고, 이마트의 와인 판매 개시 행사에 농무부 고위 관계자들이 직접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포틀랜드=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이마트#오리건 주#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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