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장품 수출액이 지난해 처음으로 수입액을 넘어섰다. 화장품 분야에서 만년 무역수지 적자를 내던 한국이 한류(韓流)의 힘으로 흑자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26일 화장품 수출입 통계를 내는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화장품 수출액은 10억6700만 달러(약 1조1500억 원)로 집계됐다. 화장품 수출이 10억 달러를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수입액은 9억7800만 달러(약 1조600억)로 2011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었다.
화장품 무역수지의 흑자 전환은 문화의 힘으로 산업을 일으켜 세운 극적인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세계 100대 화장품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에이블씨앤씨 등 3곳뿐이다.
그러나 드라마와 음악, 인터넷을 통해 한국 문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덩달아 ‘코리안 뷰티’가 화제가 됐다. 특히 아시아 소비자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한국 브랜드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든든한 힘이 됐다. 한 번 제품을 써본 고객들이 기술력도 인정하면서 ‘라네즈’(아모레퍼시픽)와 ‘후’(LG생활건강), ‘미샤’(에이블씨앤씨) 등은 아시아에서는 누구나 아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로 성장했다.
○ 10년 새 10배로 커진 화장품 수출
한국 화장품 수출은 특히 최근 5년 동안 눈부시게 성장했다. 2002년만 해도 화장품 수출은 1억2400만 달러(약 1300억 원)에 불과했지만 2008년부터 연평균 25%씩 급증하기 시작했다.
화장품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2009년경으로 한류가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통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2008년에는 무역수지 적자폭이 약 4억 달러에 이르렀지만 2011년에는 1억8000만 달러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한국 화장품의 최대 수출 시장 가운데 하나인 중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어 수출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며 “중국에서의 성장이 기대만 못 했지만 일본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많이 팔리면서 수출이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기업들의 해외 실적도 눈부셨다. 국내 최대 화장품 회사인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해외 매출은 4428억 원으로 전년 대비 35.3% 성장했다. LG생활건강의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8.3%에서 2012년 11.4%로 늘어났다.
반면 한국 시장에서 수입 화장품들의 지난해 성적은 저조해 자구책을 찾고 있다. 랑콤, 에스티로더가 가격을 내린 데 이어 스틸라도 26일 제품 가격을 10% 인하한다고 밝혔다.
○ “화장품은 미래 성장 동력”
닥터 자르트는 2004년 창업한 화장품 회사다. 건축 회사에서 일하던 이진욱 대표가 병원에서 우연히 비비크림을 접한 뒤 사업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한 회사다. 이 회사의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은 60%에 이른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노리고 준비한 덕분이다. 닥터 자르트는 미국 세포라, 영국 부츠 등 대형 화장품 유통회사에서 팔리고 있다.
화장품은 특히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문구가 중요하기 때문에 수출이 늘어날수록 국내 일자리도 늘어나게 된다. 일본 수출 비중이 큰 미샤 관계자는 “‘메이드 인 코리아’이기 때문에 해외 시장에서 통하는 것”이라며 “원가를 낮춘다고 생산을 해외로 돌리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과 중국에 수출이 집중된 것은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지난해 일본 시장이 전체 수출액의 4분의 1인 약 2억5000만 달러를 차지했다. 향후 엔화 약세로 인한 영향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중상층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과 설화수 등 고급 브랜드의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화장품 업계는 새 정부가 화장품을 미래 성장 동력 중 하나로 꼽으면서 수출에 대한 기대를 더 높이고 있다. 황순욱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뷰티화장품산업팀장은 “한류와 연구개발(R&D)의 힘으로 빠르면 5년 내에 수출을 3조 원까지 키우고, 한국을 글로벌 화장품 시장의 ‘G7’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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