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원 “코오롱 전산망 뒤져 듀폰정보 삭제 확인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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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이유로 파일검색 명령… 되레 영업비밀 침해 가능성

코오롱인더스트리가 듀폰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린 미국 법원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재판에서 코오롱의 전산망을 뒤져 듀폰의 영업비밀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도록 명령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4일 미국 버지니아 동부법원의 명령서(injunction order)에 따르면 로버트 페인 판사는 코오롱에 듀폰의 영업비밀에 속하는 모든 서류를 10월 1일까지 듀폰에 돌려주고, 컴퓨터에 관련 파일이 남아 있다면 모두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또 10월 31일까지 법원의 승인을 받은 전문가가 코오롱의 컴퓨터와 전산망에 접근해 영업비밀 자료가 완전히 삭제됐는지 확인하도록 했다. 코오롱에는 듀폰의 영업비밀을 아는 사람, 영업비밀이 보관된 장소, 영업비밀이 언급된 모든 사안을 듀폰 측에 알려야 한다는 의무도 부과했다.

이에 대해 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된 소송에서 상대방의 영업비밀을 지운 것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전산망에까지 접근토록 하는 것은 오히려 분쟁을 이유로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구실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법조인은 “미국에서 장사하려면 무조건 미국의 룰을 따르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같다”며 “전 세계가 미국의 사법제도를 비웃는 것도 판사의 이런 법적 절대권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법무법인 아주양헌의 이창훈 특허전문 변호사는 “문서는 폐기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디지털 자료는 불가능해 이런 판결을 내리는 것”이라며 “중립적인 제3자가 자료가 폐기됐는지만 확인하며 그 외의 정보를 원고에게 전달하는 것은 금지된다”고 말했다.
▼ 코오롱 거부땐 美법원 강제집행 못하지만… ▼

괘씸죄 우려 거부의사 안밝혀… ‘20년 판매금지’ 항소절차 돌입

코오롱이 이 명령을 거부하면 미국 법원이 전산망 접속을 강제할 권한은 없다. 판결이 한국에서 효력을 미치려면 국내 법원의 승인 집행 판결을 받아야 한다. 코오롱이 지난달 30일 구미공장 가동을 중단한 것은 자발적 결정이었다.

코오롱은 미국 법원의 명령이 부당하다고 보면서도 거부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다. 향후 미국 법원에서 진행될 항소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규모가 큰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유지하려면 미국 법원의 ‘괘씸죄’에 걸려선 안 된다는 부담도 크다.

한편 코오롱은 듀폰과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해 1심 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됨에 따라 지난달 31일 미국 연방제 4순회 항소법원에 항소 의사를 통보하고 정식으로 항소 절차에 들어갔다. 코오롱은 미 법무차관을 지낸 폴 클레멘트 변호사가 코오롱의 항소심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례에 따르면 항소심은 통상 1년∼1년 6개월이 걸린다.

미 법원은 지난해 코오롱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해 9억1990만 달러(약 1조410억 원)의 배상 판결을 내린 데 이어 지난달 30일에는 코오롱의 아라미드 제품인 ‘헤라크론’에 대해 20년간 전 세계에서 생산 및 판매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코오롱#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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