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삼성전자 4년만에 ‘위기경영’ 돌입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4일 03시 00분


최대시장 유럽 유로가치 급락… 환차손 커져 최고실적 빛바래
비용절감-판매가 인상 초강수

삼성전자가 지난달부터 위기에 대응한 시나리오 경영에 나선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최대 시장인 유럽의 재정위기로 유로화의 가치가 급락하자 ‘판매가격 인상’이라는 초강수도 들고 나왔다. 국내 최대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가 위기대응 시나리오 경영에 들어간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유로화 가치 급락을 포함한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를 심각한 위협으로 보고 기존에 세운 올해 연간 사업계획에 얽매이지 않고 즉각적이고도 강력한 대응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평상시 삼성전자는 1, 2년 단위 목표에 따라 사업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하지만 대내외적으로 급박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목표를 훨씬 짧게 잡고 상황(시나리오)에 따라 대응하는 경영을 펼친다.

2008년 당시 삼성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4분기(10∼12월)에 약 1조 원이라는 사상 최악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지난해 스마트폰 세계 1위에 오른 데 이어 올해도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예상할 정도로 실적이 좋다. 겉보기엔 ‘파티’라도 열어야 할 것 같지만 삼성전자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비에 나선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유럽의 재정위기에 따른 유로화 가치 하락을 가장 큰 위기 요인으로 보고 있다. 유로-달러 환율은 지난해 5월 유로당 1.48달러에서 지난달 1.23달러로 17% 가까이 폭락했다. 최대 시장인 유럽에서 똑같은 매출을 올려도 달러로 환산하면 17%나 감소하는 것이다. TV 및 생활가전의 영업이익이 매출액의 5%대 이하인 것을 감안하면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채널A 영상] 삼성전자 고위관계자 “유로가치 급락, 심각한 위협”
▼ 삼성전자 “1유로=1.20달러 마지노선도 불안” ▼

지난해 삼성전자는 유럽에서 전체 매출의 약 24%인 39조1000억 원을 올렸다. 미국(20%), 한국(16%), 중국(14%)보다 비중이 큰 최대 시장이다. 삼성전자의 사업구조상 전체 매출의 30%가량이 유로화로 발생하지만 부품이나 소재 등 원자재 구매는 대부분 달러화로 이뤄지기 때문에 더욱 불리한 상황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삼성전자 본사는 환율 변동폭에 따라 마케팅 비용 등을 줄이고 판매가격을 올리라는 ‘가이드라인’을 최근 유럽법인에 보냈다. 심각하게 떨어지는 매출을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 가격을 올려서라도 손실을 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지법인에서는 “유럽시장 소비가 최악의 침체를 겪고 있는데 가격을 올리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며 반발하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말 해외법인 대표들이 모인 글로벌전략회의에서도 유로화 환율이 뜨거운 이슈가 돼 날선 공방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유로당 1.30, 1.25, 1.20달러 등으로 환율을 세분해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당초 유로당 1.20달러를 최악의 경우로 상정했는데 최근 유로-달러 환율이 22개월 만에 최저치인 1.23달러까지 떨어지자 비상이 걸렸다. 유럽발 금융위기가 악화될 경우 1.20달러 미만으로 떨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돌입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삼성전자가 비상경영에 돌입한 데는 이건희 회장이 5월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을 방문한 뒤 “유럽 경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빴다”고 강조하며 사장단에 ‘위기 대응’을 주문한 것이 촉발점이 됐다. 이후 최지성 부회장을 미래전략실장에 임명한 깜짝 인사도 유럽 위기의 심각성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해외법인들의 비(非)휴대전화 부문 매출 및 이익에 대해서도 특별관리에 들어갔다. 지난해 갤럭시 돌풍 이후 휴대전화 부문의 매출 신장이 두드러지면서 ‘착시효과’가 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해외법인 상당수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매출이 20∼30% 성장하는 화려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휴대전화 부문만 40∼50% 고성장하고 있는 반면 TV나 생활가전 부문은 정체됐거나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해외법인이 상당수다.

지금 잘나가는 휴대전화 산업도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자칫하면 노키아나 블랙베리 제조사인 리서치인모션(RIM)처럼 순식간에 추락할 수 있는 리스크도 크다. 최근 미국에서 갤럭시탭 10.1과 갤럭시 넥서스가 잇따라 판매 금지된 것도 악재로 꼽힌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2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당초 7조 원에서 6조6000억 원대로 낮췄으며 141만 원대까지 올랐던 주가도 최근 110만 원대로 떨어졌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삼성전자#실적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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