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절債’ 한국 채권, 갖고싶다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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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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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국석유공사의 자금담당 직원들은 두 팀으로 나눠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홍콩 등 세계 주요 도시를 훑었다. 해외 채권 발행에 앞서 투자자들을 만나고 시장 동향도 살피기 위해서였다. 당시 미국 쪽을 맡았던 석유공사 자금팀 관계자는 “우리와 미팅을 하자고 먼저 요청한 투자자들이 예년의 두 배 정도나 됐다”며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석유공사는 10억 달러어치의 5년 만기 외화채를 연 3.2%의 낮은 금리로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금리 평가의 기준이 되는 미국 국채금리(5년 만기)보다 2.1%포인트밖에 높지 않은 수준이다.

한국 기업들의 외화 조달비용이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국제시장에서 채권 발행에 나섰다 하면 투자자들이 구름같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채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채권가격이 꾸준히 높아지는(채권금리는 하락하는) 추세다. 작년 말이나 올해 초만 해도 한국 채권의 미국 국채 대비 가산금리는 3%포인트 중반대였지만 어느새 2%포인트 초반으로 낮아졌다. 100억 달러(약 11조3200억 원)를 빌렸을 때 금리가 1%포인트 내리면 이자비용이 기존보다 1억 달러는 줄어드는 셈이다. 특히 이달 초 삼성전자가 연 1.827%라는, 국채를 포함한 한국물 사상 최저 금리로 채권 발행에 성공하면서 국제시장이 한국 기업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웃돈 주고서라도 ‘사자’ 주문 쇄도


흔히 투자자들은 시장에 새로 나오는 채권에는 ‘뉴 이슈 프리미엄(NIP)’이라는 추가 금리를 요구한다. 투자자들로선 이미 시장에 유통되는 같은 기업의 채권이 있는데 굳이 신규 채권을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돈이 급한 기업들은 기존 채권의 유통금리에 0.30∼0.50%포인트를 NIP로 얹어주고 투자자들을 모집하는 게 관행이었다.

그런데 요즘 한국 기업의 신규 발행 채권은 NIP가 ‘0’에 근접하거나 아예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몰리면서 ‘웃돈’을 주고서라도 한국 채권을 사려 한다는 뜻이다. 올 2월 산업은행의 외화채는 비슷한 만기의 기존 유통채권보다 발행금리가 0.08%포인트가량 낮았다. 지난달 석유공사의 채권도 NIP가 ―0.10%포인트로 마이너스였다.

양승원 산업은행 외자조달팀장은 “채권값을 높였는데도 매수 요청이 순식간에 많이 쌓였다”며 “주문을 더 받을 수도 있었지만 투자자들이 주문한 것보다 채권 배정을 적게 받으면 실망할 것을 우려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산업은행의 채권 발행액은 7억5000만 달러였지만 주문은 40억 달러가 몰렸다.

시장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한국 기업과 은행들의 채권 발행 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한국물 외화 채권은 올 1분기 117억 달러로 벌써 지난해 총 발행액(296억 달러)의 40%에 육박했다.

○ ‘한국 경제에 대한 시각 개선돼’


한국 채권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데는 두 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우선 지난해엔 유럽 재정위기의 확산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락의 여파로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경색됐지만 지금은 각국 중앙은행의 경기부양책 등으로 시장에 온기가 생겼다.

특히 올 상반기는 유럽 국가들의 국채만기가 많아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위기신호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신용등급 A∼BBB 정도의 한국 채권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또 한국 경제에 대한 시각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크게 개선된 이유도 있다. 윤인구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유럽 재정위기 국면에서 재정건전성이나 경상수지가 모두 양호한 몇 안 되는 나라로 한국이 지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한국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가산금리는 지난해 10월 2%포인트를 넘었지만 지금은 1%포인트 안팎으로 뚝 떨어졌다. 국채부터 시작된 인기가 회사채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자금담당자는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가계부채의 담보 대비 부채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기 때문에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등 정책적인 요인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금융#증권#채권#무역#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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