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경제뉴스]카드상품도 법적으로 지식재산권 보호받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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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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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품 ‘배타적 사용권’, 카드엔 도입 안돼


《 현대카드가 자기 상품을 표절했다며 삼성카드를 상대로 소송을 걸겠다고 했다가 철회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카드 상품도 영화나 음악처럼 지식재산권으로 인정돼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건가요. 》

지난달 말 카드업계에서는 현대카드가 삼성카드에 날린 ‘선전포고’가 화제였습니다. 삼성카드의 상품이 현대카드 상품을 베꼈다며 판매를 중단하지 않으면 소송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죠.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의 라이벌 의식은 물론이고 전업카드사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양사의 ‘전쟁’은 금융계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실제로 현대카드는 지난달 26일 이 같은 내용증명을 삼성카드에 보냈습니다. 내용증명은 소송 제기 직전 “이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소송을 내겠다”고 밝히는 법적 절차입니다. 다행히 금융감독원이 중재에 나서면서 양측은 소송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습니다.

현대카드는 왜 삼성카드를 상대로 소송을 걸려고 했을까요. 지난해 11월 현대카드는 카드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모든 결제금액의 0.7%를 무조건 할인해 주는 ‘제로카드’를 내놨습니다. 전월 사용금액이나 할인한도, 횟수 등에도 제한이 없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삼성카드1, 삼성카드2 등 ‘숫자 시리즈 카드’를 내놓고 있는 삼성카드도 지난달 중순 ‘삼성카드4’를 내놨습니다. 이 카드의 특징은 언제 어디서나 무조건 0.7% 할인 혜택을 준다는 것으로 제로카드와 비슷했습니다.

현대카드는 “우리가 기획한 제로카드를 무차별적으로 베꼈으니 엄연한 표절”이라며 발끈했습니다. 카드 상품도 지식재산권으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과거 신용카드업계에서는 상품 표절을 이유로 소송을 벌인 사례가 전혀 없었습니다. 신용카드사가 제공하는 부가서비스나 혜택은 법적 권리로 보호를 받지 못해 소송을 벌여도 실익이 없었죠. 삼성카드 역시 현대카드가 소송을 걸겠다고 하자 “카드 상품은 모두가 다 비슷비슷하지 않으냐”며 “금감원이 이미 승인한 상품인데 소송을 건다고 우리를 이길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카드가 소송을 내겠다고 밝히면서 근거로 든 개념은 금융상품의 ‘배타적 사용권’이었습니다. 배타적 사용권이란 생명·손해보험, 증권, 은행 같은 금융회사들이 개발한 금융신상품의 아이디어와 독창성을 보호하기 위해 각 협회에서 1∼6개월간 독점적 사용권 및 판매권을 주는 것을 뜻합니다.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하면 이 기간에 비슷한 상품을 다른 회사는 판매할 수 없습니다. 금융회사들이 개발한 아이디어를 보호함으로써 새로운 신상품 개발을 독려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가 다양한 신상품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입니다. 2001년경 보험업계를 비롯한 은행, 증권계에 도입됐습니다.

하지만 신용카드업계에는 배타적 사용권이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결제 기능과 부가서비스만 제공하는 신용카드의 독창성을 인정하기가 어렵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현대카드의 이번 움직임은 소송 그 자체보다 카드업계에도 배타적 사용권 도입의 정당성과 시급성을 환기하기 위한 액션이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금융시장이 이렇게 개방돼 있는 상황에서는 배타적 사용권 이상으로 금융상품도 특허권 형태로 보호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며 “신용카드업계와 정부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금감원도 여신금융협회와 함께 카드 상품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을 도입하는 방안을 현재 논의 중입니다. 사용권 기간은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최대 6개월까지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배타적 사용권이 생기면 이를 얻기 위해 카드사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시장이 문란해질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죠. 카드는 은행, 보험, 증권과 달리 상품 구조가 비교적 단순해 독창성이 발휘되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비슷한 카드가 이미 많이 나온 상황이라 ‘표절’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문제라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대부분의 카드사 역시 현대카드의 주장에 호응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소송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해서 현대와 삼성 양측의 앙금이 말끔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다른 카드사 사이에서도 비슷한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신용카드에 배타적 사용권을 무조건 적용하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금융당국의 지혜로운 정책 수립이 필요한 때입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현대카드#지식재산권#카드상품#삼성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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