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비준안 국회 통과 / 新 통상시대 열렸다]<中> FTA 성공국가와 실패국가에서 배운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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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한계 뚫자”… 칠레, 적극 개방 ‘중남미 허브’로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전까지 우리에게 FTA 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칠레와 멕시코였다. 2004년 한국과 가장 먼저 FTA를 맺은 칠레는 ‘칠레산 와인’을 앞세워 우리에게 무역으로 친근하게 다가온 나라다. 멕시코는 한미 FTA의 문제점을 거론할 때마다 단골로 입에 오르내리던 나라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가파른 경제 침체를 겪은 터라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FTA 괴담’을 퍼뜨릴 때 멕시코의 사례를 들곤 했다. 》 FTA는 양날의 칼이다. FTA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칠레처럼 무역 허브가 될 수도, 멕시코처럼 경제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극명히 대비되는 두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가 FTA를 통해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인다. ○ ‘중남미 경제의 허브’ 칠레
지금은 FTA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칠레지만 시작은 다소 늦었다. 1994년 NAFTA를 발효시킨 멕시코와 달리 칠레는 1996년에야 캐나다와 첫 FTA를 맺었다. 하지만 일단 시동이 걸리자 속도는 빨랐다. 유럽연합(EU·2002년), 미국 한국(이상 2004년)과 FTA를 사실상 동시다발로 체결했고, 지금은 세계 4대 경제대국인 미국, EU, 일본, 중국과 모두 FTA를 체결한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가 됐다.
칠레의 전략은 FTA를 통한 적극적인 개방이었다. 총수출의 55%가 구리일 정도로 천연자원에 의존하던 칠레는 1994년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가입하면서 “2010년까지 무역 자유화 조치를 완료하겠다”고 선언한 뒤 적극적인 개방 전략을 취했다. 주변국들과 FTA를 시작으로 ‘스파링’을 마친 칠레는 이후 FTA 협상 상대국들끼리 경쟁을 붙였다.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지렛대가 됐다. 2005년 FTA를 체결한 중국을 향해 ‘한국은 우리와 FTA를 맺고 공산품 수출을 크게 늘렸다. 우리를 원하면 FTA를 맺자’고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칠레로서는 아시아권에서 한국과 최초로 FTA를 성사시킴으로써 한국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의 교두보를 확보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중남미 다른 국가들에 비해 지리적으로 고립되고 내수시장이 협소한 한계를 FTA로 뚫은 것이다.
결과는 매우 좋았다. 2004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매년 6%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명실상부한 중남미 경제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 적극적 개방정책의 결과로 상품 및 서비스무역 총액이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를 넘었다. 칠레는 전통적으로 구리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 181개국에 3910개 품목을 수출할 정도로 무역 강국이 됐다.
○ 섣부른 FTA가 양극화 불러온 멕시코
멕시코는 1994년 미국, 캐나다와 NAFTA를 발효시키면서 ‘화끈한’ 개방에 나섰지만 준비 없이 시작한 개방은 참담한 결과를 불러왔다. NAFTA를 포함해 EU, 일본 등 44개국과 12개의 FTA를 체결했으나 대부분의 체결국과 무역적자가 심화되자 2003년 ‘FTA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며 협상을 중단했다. 올해 4월 멕시코-페루 FTA를 공식 서명하며 재개했지만 상처는 컸다.
전통적인 농업국가인 칠레와 달리 멕시코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 국내 제조업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 등 선진국의 공산품이 들어오다 보니 국내 중소 제조업이 무너졌고 농촌인구의 이탈이 가속화됐다. 이런 영향으로 수출과 내수의 간극도 벌어졌고 도시와 농촌, 수도권 및 미국 국경지역과 지방 간에 양극화가 심각해졌다. ▼ 칠레, 181개국과 교역… 멕시코, 양극화 심화 ▼
멕시코의 소득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OECD에 따르면 멕시코의 지니계수는 0.474이며
상대적 빈곤율도 18.4%로 우리나라의 지니계수(0.314)와 빈곤율(15.2%)에 비해 상당히 높다. 양극화 문제는 이 나라의
구조적인 문제였지만 NAFTA 이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 한국 경제, FTA 활용에 국운 걸어야
칠레의 성공과 멕시코의 실패 원인을 오로지 FTA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다소 무리다. 정치적 안정성, 개별 기업들의 경쟁력, 그
나라의 국민성 등 복합적 요인이 많다. 한미 FTA 괴담을 퍼뜨린 일부 세력들은 “NAFTA 때문에 멕시코가 망했다”고
이분법적으로 주장했지만 실상은 역사적으로 고착화되어 온 구조적 문제,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연방정부의 정책 부재, 정치사회적
불안정, 외환위기 등 반복적인 경제위기 등이 작용한 결과다.
결국 FTA를 통해 한국 경제를 업그레이드하려면
기업과 개인의 경쟁력 확보 노력과 정부의 FTA 활용률 향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과 EU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을 키워 관세장벽이 사라진 현지 시장에 정착한다면 나머지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된다. 아울러 현재 45%(EU 기준)에 머물러 있는 FTA 활용률을 크게 높여 애써 만들어 놓은 자유무역의 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김진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위원은 “멕시코는 FTA 개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정책 실패가 발생했고, 칠레는 기업가들의
전문성, 의사결정의 예측 가능성 등이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며 “FTA 그 자체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경제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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