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매출 10조 ‘한국판 실리콘밸리’ 꿈 익는다

■ 2015년 완공 예정 판교테크노밸리 건설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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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달 30일 오전 9시, 정보보안 장비업체 윈스테크넷의 조현정 팀장은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앞 버스정류장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렸다. 이 회사는 지난해 3월 판교테크노밸리에 둥지를 틀었다. 조 팀장은 “작년만 해도 이곳에 들어온 기업이 많지 않아 출근길도 한산했지만 이제는 버스 안에서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축구장 41개 면적인 45만5000m² 규모의 판교테크노밸리가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생명공학기술(BT) 문화기술(CT) 분야 등 최첨단 산업이 집결한 한국 IT 융합산업의 ‘심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농부들이 경운기를 몰며 밭을 갈고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를 재배하던 농촌이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상전벽해(桑田碧海)한 것이다.

○ 300개 기업 8만 명, 연 10조 원 매출

4일 경기도청에 따르면 완공시점이 2015년인 판교테크노밸리는 최근 100% 분양됐다. 2015년에는 약 8만 명의 인력이 1년에 10조 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매머드 단지로 변신한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기업들이 이주해 올해 9월 기준으로 126개 업체가 이곳에 들어왔다. △해외 연구개발(R&D) 기관 △일반 기업들의 R&D 사무소 △데이터센터 및 금융시설 등이 걸어서 10∼2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기업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의 최성규 운영기획팀장은 “세계적으로도 다양한 벤처기업이 이렇게 집중된 공간에서 모든 업무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없다”며 “이종 기업 간 협업을 통해 좀 더 창의적인 사업 아이템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령 SK C&C 컨소시엄에는 IT서비스 기업인 SK C&C 외에 ‘파스의 명가’로 불리는 신신제약, ‘뽀로로’로 유명한 콘텐츠 회사 아이코닉스엔터테인먼트 등 16개 기업이 한 구역에 몰려 있다. SK C&C와 아이코닉스엔터테인먼트가 IT와 CT를 접목한 모바일 콘텐츠 사업을 할 수 있고, SK C&C와 신신제약이 힘을 모아 의료 IT와 같은 고(高)부가가치 사업에 공동 진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 벤처 문화 꽃 피다

서울 여의도에서 건물을 빌려 쓰던 정보보안업체 안철수연구소도 창업 16년 만에 처음으로 사옥을 지어 판교로 옮겼다. 이를 기념해 ‘천사(1004) 데이’인 4일 기자들을 판교테크노밸리로 초청했다. 이 회사 앞 버스정류장 이름은 ‘안철수연구소 정류장’이었다. 그 옆 정류장은 SK케미칼. 대부분의 정류장이 가까운 기업의 이름을 땄다. 작은 것부터 입주 기업들을 배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벤처기업들의 창업자금 지원부터 인수합병(M&A)까지 지원하는 ‘미래에셋벤처투자’도 이곳에 함께 들어왔다. 이렇게 투자회사와 벤처기업이 모여 있으면 벤처기업이 추가 투자를 유치하거나 각종 금융정보를 얻기가 편리해진다.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판교세븐벤처밸리’는 벤처기업이 모인 7개의 건물이 하나로 묶여 있는 독특한 곳이었다. 윈스테크넷, 나우콤, 마이다스아이티, 공간정보기술, 이노와이어리스, MDS테크놀로지, 이랜텍 등 30∼40개의 IT 기업이 입주해 있다. 윈스테크넷은 입주기업들이 공동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윈스테크넷 관계자는 “그동안 보안업체들은 작은 시장에서 서로 가격을 ‘후려치는’ 등 출혈 경쟁을 펼쳐왔다”며 “자주 얼굴을 보며 신뢰를 쌓으면 중복되는 영역에서 경쟁을 자제하고 경쟁력 있는 기술을 모으는 등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창의성을 높인다’는 벤처문화도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연구소 새 사옥 1층 로비에는 마치 로마의 광장을 연상케 하는 ‘안랩 계단’이 있었다. 건물 로비에 계단식으로 좌석을 만들어 공연도 하고 세미나도 하는 다목적 공간이다. 사장실에는 벽도 문도 없었다.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사장은 “판교테크노밸리에 입주한 기업들은 사옥을 단순한 오피스 공간이 아니라 창의적인 개발문화의 인프라로 설계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판교=정진욱 기자 cool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