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섬 거래정지 1시간前 무슨 일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0일 03시 00분


기관은 175만주 팔아치우고, 외국인은 하루 전에 물량 다 털어…
영문 모른채 사들인 개미들만 쪽박

상장된 지 2개월 만에 거래가 중단된 중국고섬에 대해 기관투자가와 외국인투자가가 사전에 ‘심각한 문제로 곧 거래가 중단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해 보유주식을 팔아치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외국인은 거래 중단 전 지속적으로 지분을 팔아 거래중단 당일 보유지분이 전무했으며, 기관은 거래중단 당일 단 1시간 만에 174만8140주를 팔아치웠다. 그 물량은 고스란히 개인투자자들이 넘겨받았고 이 주식은 2개월째 거래정지 상태다. 개인이 손실을 모두 떠안았다는 얘기다.

마침 일부 기관은 중국고섬의 거래정지 전날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고섬이 연 기업설명회(IR) 행사에 참석했다가 싱가포르거래소에 상장된 중국고섬의 주가폭락 및 거래중지 소식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기관과 외국인의 매매에 이상한 점이 없었는지 전반적인 점검에 착수했다.

‘차별화된 폴리에스테르 섬유업계의 선도 업체.’ 3월 15일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쓴 중국고섬 보고서 제목이다. 중국고섬은 싱가포르에 상장된 섬유업체로 한국에는 주식예탁증서(DR) 형태로 올 1월 25일 상장됐다. 이처럼 갓 상장한 중국기업으로는 드물게 중국고섬을 ‘좋은 기업’으로 호평하는 보고서가 연달아 나왔다. 하지만 이 기업은 이로부터 1주일 뒤인 3월 22일 개장 이후 1시간만 거래가 이뤄진 뒤 거래중단됐다. 중국고섬에 대한 평가가 좋았던 상황에서 개인들은 3월 22일 중국고섬의 주가가 하한가로 떨어지자 매집에 나서 176만9000주나 사들였다.

문제는 중국고섬의 거래중단 공시가 이미 전날인 3월 21일 싱가포르거래소에서 나왔고 국내 기관 일부가 중국고섬의 IR 행사장에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싱가포르거래소에서 중국고섬 주가는 24% 폭락했고, 중국고섬은 이날 오후 6시 33분(현지 시간) 일시거래중단 공시를 냈다.

IR 행사장에 참석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문사 매니저들은 “현장에서는 주가 폭락 소식만 알았지 상세한 내용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중국고섬의 거래중지 사유가 계열사의 부실회계 문제라는 공시는 3월 24일 나왔다. 하지만 애널리스트 등을 통해 거래중지 사유에 대한 힌트가 조금이라도 흘러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하긴 힘들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애널리스트는 분석대상 기업의 IR 담당자와 평소 끈끈한 관계를 맺어놓고 기업이 공시를 내기 전에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이를 매니저에게 알리기도 한다”며 “개인과 기관의 승부에서 항상 기관이 정보가 빠른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 ‘공정관리’ 해야할 거래소-주간사 뒷짐 ▼

3월 21일 싱가포르에서는 거래중단 공시가 떴는데도 한국에서는 다음 날인 22일에 1시간 동안 거래가 진행됐다. 중국고섬이 한국거래소에 따로 공시를 하지 않은 데다 한국거래소가 DR를 상장해놓고도 원주가 거래되는 싱가포르거래소와 정보공유 시스템을 만들어놓지 않았던 무능력이 결합돼 빚어진 일이다.

한국거래소는 거래소를 선진화한다는 명분으로 2005년부터 외국기업 상장 유치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지금껏 상장된 외국기업 18개사 가운데 한상기업 또는 재일교포가 오너인 기업을 제외하면 실제 외국기업은 모두 중국기업이다. 한국보다 금융시스템이 뒤진 중국기업들은 국내 IR에도 적극적이지 않았고 한국과 관행이 달라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했는데도 이를 소홀히 했다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중국고섬의 경우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하면서 싱가포르인 2명이 사외이사로 들어가 있지만 한국거래소는 최소한의 이런 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 공시대리인제도를 통해 적극적인 공시를 하도록 했지만 이번 사태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상장절차를 맡았던 대우증권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대우증권 한화증권 등 4개 증권사는 애초에 공모가를 5970원으로 정했지만 한국증시 상장소식에 싱가포르 주가가 치솟자 7000원으로 올렸다. 결국 2100억 원 중 절반만 일반 공모돼 증권사들이 1050억 원을 나눠서 책임졌다. 이처럼 무리한 공모를 진행한 이유는 기업공개(IPO) 보수가 총공모금액의 1% 이하로 떨어진 국내 기업과 달리 중국기업은 6∼7%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고섬 소액투자자들은 이 때문에 중국고섬이 이대로 상장폐지된다면 거래소와 대우증권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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