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시장 왜곡… 충성스러운 소비자만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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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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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료만 내면 되지 왜 휴대전화 값을 따로 내나요? 그러면 바보예요.”

식품회사 영업사원 한모 씨(28)는 기자는 물론이고 대다수 소비자를 ‘바보’라고 불렀다. 한 씨는 2008년 초 최고의 인기 휴대전화였던 삼성전자의 ‘연아의 햅틱’을 산 뒤 그 후엔 한 번도 전화기 값을 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전화기 값은 냈다. 다만 늘 기계를 되팔아 돈을 조금씩 남겼을 뿐이었다. 이른바 ‘폰테크’였다.

11일 만난 한 씨는 애플의 최신 스마트폰인 ‘아이폰4’를 쓰고 있었다. 애플이 KT에 판매하는 가격인 ‘출고가격’이 81만4000원인 값비싼 제품이었다. 한 씨는 “물론 이것도 공짜”라고 말했다. 아이폰4가 공짜인 이유는 월 9만5000원 요금제에 24개월 약정으로 가입했기 때문이다. KT는 ‘공짜’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쇼킹스폰서’라거나 ‘요금할인’ 등 각종 이름을 붙여가며 여러 할인을 해줬다. 결과적으로 한 씨는 월 9만5000원과 부가세 9500원만 내면 됐다. 2년 의무사용 조건도 의미가 없었다. 한 씨는 지난해 11월까지는 삼성전자의 ‘갤럭시S’를 쓰고 있었다. 그전에는 2009년 1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8개월 동안 ‘아이폰 3GS’를 이용했다. 2년은커녕 만 1년도 쓴 적이 없다.

한 씨는 “위약금을 물고 거기에 조금 더 붙여서 쓰던 스마트폰을 ‘공기계’로 팔면 된다”고 설명했다. 통신사는 각종 계약으로 스마트폰 가입자를 2년 동안 묶어놓는데 이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계약 부담이 없는 스마트폰을 산다는 것이다. 위약금은 스마트폰 출고 가격에서 통신사가 24개월 동안 각종 명목으로 할인해주기로 한 금액 가운데 이용 기간만큼을 뺀 돈이다. 예를 들어 90만 원짜리 스마트폰을 살 때 통신사가 매월 4만 원 정도를 할인해주기로 했다면 5개월을 쓴 뒤에는 20만 원을 이미 할인받았으니 남은 70만 원만 위약금으로 내면 된다. 그리고 쓰던 스마트폰을 70만 원에 중고시장에 팔면 금세 팔린다. 한 씨는 “갤럭시S나 아이폰처럼 가격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프리미엄 폰을 사는 게 포인트”라고 말했다.

한 씨는 이런 방식으로 아이폰3를 55만 원에 팔았고, 갤럭시S도 80만 원에 되팔았다. 위약금을 내고도 남았다. 물론 이로 인한 통신사와 제조사의 부담은 결국 다른 소비자에게 전가된 셈이다.

이런 문제는 통신사가 휴대전화 제조업체의 전화기를 모두 구입해 이를 소비자에게 되파는 구조에서 나온다. 제조업체가 MP3플레이어를 팔 듯 직접 전화기를 팔 수 있다면 값싼 제품을 만드는 신규 업체가 시장에서 경쟁하며 전화기 가격을 낮출 수 있다.

통신사에 휴대전화를 팔지 못하게 하고 범용가입자식별모듈(USIM) 카드만 따로 팔게 하는 방법도 있다. USIM 카드와 휴대전화를 따로 팔면 통신사는 통신서비스에 집중하고 제조업체는 전화기 경쟁력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를 구입할 때 한 번에 내는 돈은 다소 늘어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시장 경쟁을 유도하고 마케팅비용 지출을 줄여 소비자에겐 이익이 된다. 하지만 이럴 경우 통신사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고객 모집이 어려워지고 제조사에는 시장에서 잘 안 팔리는 휴대전화 재고를 떠안는 부담이 생긴다. 이런 제도가 국내에 쉽게 도입되지 못했던 이유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이런 방안에 대해 “국내 소비자는 50만 원 이상 내고 휴대전화를 사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며 “과거에도 보조금을 줄이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은 보조금을 받고 값싼 휴대전화를 사려는 고객이 대세”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연 그런지 국내 통신업계와 휴대전화 제조업체, 정부 당국자는 한 번도 유통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없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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