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석동빈 기자의 DRIVEN]그랜저 5G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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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면 충격 흡수·소음 저감 등 럭셔리 수입차 부럽지 않은 승차감
다기능 암레스트·시트내 마사지 기능 내장 등 최고급 편의장치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게 현대자동차 ‘그랜저’는 꿈이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그랜저는 부자 혹은 사장님이라는 등식이 성립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위상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중산층과 그 위 소득계층을 구분 짓는 경계선에 서 있는 상징적인 모델이다. 그랜저의 신분이 약간 하락하면서 오히려 관심은 더 높아졌다. 중산층도 접근 가능한 모델이어서다. 중형차를 탔던 수많은 운전자 대부분이 잠재 소비자다. 대상 소비자가 늘어난 만큼 까다로운 요구사항도 많아졌다는 뜻이다. 게다가 4000만 원 안팎의 엔트리급 수입차로 넘어가려는 소비자의 발길도 붙잡아야 하는 임무도 현대차로부터 부여받았다. 이처럼 다각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5세대(5G) 그랜저를 가혹하게 테스트해 봤다. 시승한 모델은 HG300으로 모든 편의장치가 들어간 ‘풀옵션’이다.》
○디자인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런가. 막 배달돼온 그랜저를 보는 순간 첫인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어떻게 보면 멋지고, 또 다르게 보면 난해하다. 그래서인지 소비자들의 평가는 다양하다. ‘쏘나타’ ‘제네시스’ ‘에쿠스’를 묘하게 섞어놓은 느낌이 든다. ‘멋지게 생겼지만 쏘나타와 많이 닮아서 차별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처럼 디자인 유전자(DNA)를 공유하는 패밀리룩이어서 비슷해 보이는 게 정상이긴 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디테일에선 쏘나타와 제법 차이가 있다.

전체적으로 고급스럽게 보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깨끗한 이미지를 연출하려고 워셔 노즐을 보이지 않게 했고, 실내 스위치의 테두리를 크롬몰딩으로 둘러 잔뜩 멋을 부렸다. 하지만 스위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간 어설픈 감도 든다.


밤에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천사의 날개를 모티브로 디자인된 LED 라이트 가이드가 시선을 확 잡아끈다. 실내의 파란색 무드 조명 역시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미등을 켜면 센터페시아 하단에 있는 수납공간 덮개에 파란색 무늬가 보여 신기한 느낌을 준다. 스티어링휠이나 가죽시트의 재질과 마감도 한 단계 올라가 준프리미엄급은 된다. 새 차임에도 화공약품 냄새가 덜 나는 것도 좋았다. 마감재의 재질이 좀 더 부드러웠으면 하는 생각은 들었다.

○동력 성능

가솔린 직접분사 엔진의 능력은 확실히 기존 엔진을 뛰어넘었다. 급가속을 해도 출발이 너무 부드러워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시간을 8초대 초반으로 예상했지만 측정 결과는 7.5초가 나왔다. 시속 200km까지는 30초가 걸렸고 최고속도는 시속 250km까지 가능했다. 시속 180km까지는 쉽게 올라가는 편이고 230km부터는 가속력이 크게 둔해진다.

최고속도가 출력을 입증해주기는 하지만 출력으로 운전의 재미를 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승차감과 연료소비효율(연비)을 고려해서인지 가속페달의 반응성을 무디게 해놓은 데다 6단 자동변속기의 동력 직결감도 떨어져서 270마력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으로 국산화한 자동 6단 변속기에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지만 변속 스피드나 동력이 전달되는 느낌이 개선됐으면 한다.

일반적인 서울시내 주행 연비는 L당 8km 안팎이었고, 시속 80km 정속주행 연비는 17km대, 시속 100km 정속주행 연비는 15km 정도 나왔다. 출력과 차체의 크기를 감안하면 합격점이다.

○승차감과 핸들링


종합적인 승차감은 이제 렉서스 부럽지 않게 좋아졌다. 특히 소음차단이 크게 개선돼 타이어 노이즈가 많이 줄었다. 웬만한 중대형급 럭셔리 수입차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곱게 깔린 아스팔트와 소음이 많이 나는 콘크리트를 번갈아 달려도 소음의 차이가 크지 않아 높아진 방음 성능을 실감했다. 현대차 측은 고성능의 흡음재, 뒷좌석 바닥 진동 감소 패드 확대 적용, 차음 유리 장착 등으로 소음과 진동을 크게 줄였다고 했다. 다만 시야각이 넓은 대형 사이드미러는 좋지 않은 후방 시야에 대한 보상인 것 같은데, 큰 만큼 시속 120km 이상 고속주행 중에 바람소리가 커지는 점은 아쉬웠다.

엔진음도 좋아졌다. RPM을 올리면 ‘세엥∼’ 하는 고주파 소리가 났던 현대차의 구형 엔진과는 달리 제법 ‘사운드’가 나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서스펜션의 진보도 있었다. 4세대 그랜저TG보다 분명히 단단해지기는 했는데도 노면의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하고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도 출렁이는 여운을 남기지 않는다. 현대차가 이제 노면에서 차체로 올라오는 충격을 다스리는 법을 제법 깨달은 것 같다. 소음 저감과 울렁이지도 튀지도 않는 서스펜션 덕분에 종합적인 승차감은 구형 그랜저보다 상당히 높아졌다.

하지만 핸들링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상하의 출렁임이 줄었기에 핸들링과 코너링도 상당히 개선됐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반경이 짧은 코너에서는 여전히 휘청거렸고 고속으로 올라가면서 차체의 컨트롤이 부정확해지는 점도 나아지기는 했지만 직전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다양한 편의장치

편의장치는 1억 원에 육박하는 최고급 수입차 수준이다. 전동식 뒷유리 커튼이 달려 있고 뒷좌석 도어 윈도에는 수동식 커튼이 마련돼 안락한 탑승공간을 제공한다. 대형 고급차처럼 뒷좌석 열선 조절 및 오디오 조작 등의 기능이 들어간 ‘다기능 암레스트’도 있다.

최고급 럭셔리 세단에 적용되는 ‘나파(NAPPA) 가죽 시트’는 고급스러우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줬는데 시트에는 마사지 기능까지 내장돼 있다. 운전대를 감싼 가죽의 촉감도 좋았다.

선행 차량이 정차하면 차량을 자동 정지시켰다가 다시 출발하면 자동으로 따라가게 하는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은 고속도로 주행뿐만 아니라 교통 정체 시에도 유용하게 쓸 수 있어 운전자의 피로를 줄여준다. 이 밖에 자동으로 일렬주차를 해주는 주차보조시스템도 들어 있어 여성 운전자에게 환영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트렁크도 넓다. 현대차에 따르면 골프백 4개와 보스턴백 4개를 넣을 수 있다고 한다.

○브레이크는 개선 필요

새 차여서 그러려니 했다. 브레이크가 너무 부드럽게 작동한다고만 생각했다. 처음 차에 올라 일반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자칫 앞에 멈춰선 차를 추돌할 뻔했다. 승차감을 생각해서 초기에 부드럽게 브레이크가 잡히도록 한 것은 좋은데 지나치게 부드러운 게 문제였다.

또 시속 100km 정지거리를 측정했는데 첫 번째는 45m로 여느 자동차와 비슷했지만 두 번째 59m, 세 번째 63m로 급격히 늘어났다. 브레이크가 쉽게 열을 받고 일단 열을 받은 뒤에는 아무리 강하게 밟아도 잠김방지시스템(ABS)이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마찰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시승차만의 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전체 차량이 같은 상황이라면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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