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나 ‘해바라기’ 같은 그림을 보고 있으면 테오도루스 반 고흐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지나친 술과 담배로 만신창이가 되고, 정신분열증까지 앓았던 빈센트의 그림을 꾸준히 사주면서 평생에 걸친 후원자 노릇을 했던 동생이었죠. 그가 없었으면 빈센트의 그림도 없었을 겁니다.
최근 페이스북의 성공 신화가 계속해서 이야기됩니다. 스물일곱의 나이로 억만장자가 된 마크 저커버그는 살아생전 어떤 성공도 거두지 못했던 불행한 반 고흐와는 달리 매우 이른 성공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처음에는 후원자가 필요했습니다. 컴퓨터는 잘 다뤘지만 페이스북을 수많은 사용자에게 서비스하려면 서버 임대비용부터 아르바이트 프로그래머 일당까지 돈이 들어갈 일이 많았기 때문이죠. 이 운영비를 댔던 건 하버드대 2년 선배였던 에두아르두 새버린입니다. 새버린은 대학생이었지만 브라질의 성공한 사업가였던 아버지로부터 사업에 대한 재능을 물려받아 고등학교 때 이미 몇 건의 투자에 성공해 1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모아놨었죠. 테오도루스 반 고흐가 형의 그림의 가치를 미리 알아보고 후원했던 것처럼 새버린도 페이스북의 가치를 일찍 알아봤던 겁니다.
하지만 새버린은 페이스북의 성장 과정에서 갑자기 잊혀졌습니다.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움직이는 벤처캐피털이 페이스북에 투자하기 시작하자 겨우 몇만 달러를 굴리던 대학생 투자자는 필요 없어진 것이죠. 한때 페이스북의 비즈니스를 총괄했던 새버린은 그렇게 자신이 ‘발견’했던 회사에서 손을 뗍니다. 하지만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 페이스북 투자로 번 돈으로 여생을 즐기기엔 그는 너무 젊었죠. 이제 겨우 스물아홉일 뿐이니까요.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는 ‘퀴키’(Qwiki.com)라는 서비스가 화제입니다. 검색 창에 검색어를 입력하면 검색 결과를 문서와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으로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이 서비스의 검색 창에 ‘서울(seoul)’이라고 입력하면 합성된 음성이 서울과 관련된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들려주는 것이죠. 이 서비스는 앞으로 개인 비서 역할도 할 예정입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오늘 일정’이라고 퀴키에 입력하면 이 서비스가 내 일정과 날씨 등을 검색한 뒤 “아침에 비가 올 예정이니 우산 챙기세요. 그리고 점심 약속은 거래처 박 대리와 하시고, 오후 3시 업무보고를 준비하세요”라고 음성으로 알려주는 거죠.
새버린은 이 서비스에 최근 80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이 회사가 유치한 투자금액 950만 달러 가운데 대부분이었죠. 비즈니스의 세계는 종종 돈과 권력만이 오가는 삭막한 공간인 것처럼 묘사되곤 합니다. 하지만 감동을 주는 제품과 서비스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기업가의 활동은 우리의 예술적인 감정을 고양시키는 예술가의 활동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위대한 예술가에게 좋은 후원자가 꼭 필요한 것처럼 위대한 기업가의 옆에도 좋은 투자자가 필요합니다. 젊은 투자자의 새로운 시도가 한국의 투자자들에게도 자극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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