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전세가격 8억… ‘반포 불패’ 왜?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김모 씨(37)는 지난 달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를 찾았다. 전세로 살기 위해 그가 마음에 둔 아파트는 단지 안에 초등학교가 있어 큰 딸이 학교를 다닐 때 각종 범죄로부터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김 씨는 "매물로 나온 전세가격이 115㎡형에 8억 원 가량 한다"는 중개업자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나마 단지 전체에 전세로 나온 물건이 한두 개밖에 없는데, 김 씨처럼 반포동에 전세 입주를 위해 찾아오는 손님은 꾸준하다는 것이 이 공인중개사의 설명이었다. 결국 김 씨는 반포동 입주를 포기하고 인근 서초동에서 4억 원 대로 전세 계약을 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의 와중에도 반포지역의 전세가격과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 20여 년 간 압구정동과 대치동 도곡동이 차지하던 강남 부촌(富村)의 지위가 반포로 옮겨오고 있다는 분석까지도 나올 정도다.

● 전세금으로 강북 아파트 두 채 살 수 있어

반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지난해 7월 입주한 반포래미안퍼스티지는 112㎡형이 입주 당시만 해도 4억 원 정도에 전세가 나갔지만 올해 2월엔 8억3000만~8억5000만 원에 계약이 됐다"고 말했다.

비록 이 같은 천정부지의 전세가격은 3월 들어서는 학군 수요가 사라지면서 7억5000만 원 대로 다소 낮아졌지만 이 일대 부동산 업자들은 방학시즌이 되면 또다시 8억 원 대를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8억 원은 웬만한 강북의 아파트 두 채를 살 수 있는 가격. 특히 이 아파트의 200㎡ 이상 대형 평형은 전세가격이 10억 원을 넘는다.

전세금이 많이 올랐다는 서울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반포동의 시세는 두드러지게 많이 올랐다.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서울 지역 전체의 3.3㎡당 평균 전세가격은 지난해 9월말 664만 원에서 올 3월 12일 현재 700만 원으로 5.4% 상승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반포동의 3.3㎡당 전세값은 1058만 원에서 1198만 원으로 13.2%나 급등했다.

이는 같은 기간 강남구(7.0%), 송파구(8.5%)보다도 높은 상승폭이다. 전세값이 이상 급등세를 보이자 서초구청은 최근 공인중개사들을 모니터요원으로 위촉해 집중적으로 시세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가격이 얼마든 간에 어떻게 해서든 이곳에 전세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전세 뿐 아니라 집값도 반포지역이 최근 수년 간 서울지역에서 가장 빠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닥터아파트가 4년 전부터 현재까지 서울 시내 동별 평균 매매가격 순위를 조사한 결과 반포동은 2006년 3월 3.3㎡당 2048만 원으로 서울 전체 동 가운데 20위였지만 2008년 3월에는 2832만 원으로 12위, 올해 3월에는 3393만 원으로 4위까지 치솟았다.

● 학군 교통 재건축 등 겹쳐

반포의 급부상은 부동산 시세를 자극하는 여러 가지 요인이 한꺼번에 작용한 결과다. 일단 반포자이와 반포래미안퍼스티지라는 대규모 새 아파트 단지가 2008년 말부터 차례로 입주를 시작했다. 반포동에는 그동안 주민들이 "새 아파트 구경을 한 지 30년은 됐다"고 말할 정도로 오래된 주택들만 즐비했다. 새 집에 대한 수요는 쌓여왔는데 때마침 건설사들이 경쟁적으로 아파트를 공급하니까 한꺼번에 이주 수요가 폭발한 것이다.

또 지하철 9호선 개통 등 교통환경의 변화로 여의도나 서울 중심부로 출퇴근을 하려는 직장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한 공인중개사는 "대치동에 사는 집을 전세를 놓고 이곳으로 오려는 사람들이 꽤 있다"며 "10여 분이면 여의도에 갈 수 있어 금융회사에 다니는 고소득 샐러리맨이 선망하는 동네가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 강남 유일의 사립초등학교인 계성초등학교가 2006년 명동에서 반포동으로 이사를 오고, 인근의 세화고등학교도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되면서 학군 수요마저 촉발됐다.

부동산업계에선 반포지역에 다른 단지의 재건축마저 본격화되면 반포가 강남의 또다른 '신흥 부촌'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최근 이 지역의 주택 수급 불균형이 낳은 일시적 현상이라는 해석도 있다. 닥스플랜의 봉준호 사장은 "반포동의 높은 시세는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해 생긴 현상으로 1년 정도 있으면 다시 수그러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