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세계인의 술로/1부]<2>수출 역군 - 현지화로 판로 뚫은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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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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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건강酒’ 참맛 日서 먼저 알아줘… “99% 수출합니다”

검은콩 - 마카 - 울금 막걸리
일본인 까다로운 입맛 공략
가격경쟁 않고 ‘고급화’ 고집

국제 소믈리에 영입하고
자동화로 균일한 맛 유지
지난해 50만 달러 수출

‘1시간에 3600병’ 자동화 시설‘초가’는 고급화 전략으로 일본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초가의 한 직원이 유리병에 자동으로 막걸리를 담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이 기계는 1시간 동안 막걸리 3600병을 담을 수 있다. 일본 수출용이라 일본어로 ‘마코리’라고 적혀 있다. 철원=홍진환 기자
‘1시간에 3600병’ 자동화 시설
‘초가’는 고급화 전략으로 일본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초가의 한 직원이 유리병에 자동으로 막걸리를 담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이 기계는 1시간 동안 막걸리 3600병을 담을 수 있다. 일본 수출용이라 일본어로 ‘마코리’라고 적혀 있다. 철원=홍진환 기자
“프랑스 파리에서 와인이 아니라 막걸리를 즐겨 마시게 될 그날까지.”

허무맹랑한 듯하면서도 결기가 느껴진다. 강원 철원군 김화읍 김화농공단지에 있는 중소규모 막걸리 생산업체 ‘㈜초가(草家)’의 기업 목표다. 막걸리의 ‘진화’ 속도를 생각해 보면 실없는 소리라고 웃을 일만은 아니다. 초가의 이창규 관리이사(46)가 유리병에 담긴 고급 막걸리를 들고 국내 대형 유통회사를 찾았을 때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그 사이 백화점마다 고급 막걸리가 판매되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비싼 막걸리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아쉬운 점은 막걸리의 참맛을 일본 사람들이 먼저 알아봤다는 것. 초가가 생산하는 ‘초가 막걸리’와 농주의 일본 매출은 2007년 40만 달러(약 4억6400만 원)에서 지난해 50만 달러로 늘었다. 초가는 설립 초기부터 철저히 외국시장을 연구하고 공략했다. 그 결과 일본을 중심으로 전체 물량의 99%를 수출하고 있다.

○ 처음부터 일본 공략

강원도에서 휴전선에 가장 가까운 김화읍, 그중에서도 산 하나만 넘으면 바로 비무장지대(DMZ)로 들어가는 곳에 초가가 있다. 이창호 대표이사(49)는 2005년 8월 설립 당시부터 일본시장에서 사용할 광고문구로 ‘청정지역에서 생산되는 깨끗한 막걸리’를 염두에 두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1992년부터 일본에 소규모로 막걸리를 팔면서 일본사람들이 막걸리에 대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위생과 청결 문제라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초가는 현재 이 대표가 일본에서 유통을 담당하고 있으며 친동생 창규 씨가 관리이사로 공장 운영 및 생산을 전담하고 있다. 이 대표는 1997년 일본에서 막걸리 판매회사 ‘농주Japan’을 세웠고 2000년에는 우리나라에도 주류 수출회사를 설립했다.

○ 깨끗한 술, 건강에 좋은 술

이 이사는 “처음부터 일본시장을 공략하다 보니 까다로운 일본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공장에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가위넣기’(일명 도봉질) 작업을 자동화했다. 가위넣기는 술이 숙성되는 과정에서 산소를 공급하고 원활한 효모작용을 돕기 위해 휘젓는 작업을 말한다. 대부분의 업체가 숙련공의 경험에 의존해 휘젓는 속도를 조절하지만 초가에서는 미세한 온도차를 인식하는 기계가 작업을 한다. 덕분에 생산하는 막걸리 대부분이 균일한 맛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또 DMZ와 가까운 청정지역에서 자동화 설비로 생산하다 보니 안전한 술, 깨끗한 술을 만들 수 있었다.

2006년 무렵 ‘일본발 막걸리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특히 이 이사는 ‘막걸리가 일본에는 없는 술’이라는 점을 막걸리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소주나 청주, 위스키 등은 이를 대신할 일본 술이 있는 반면 막걸리는 일본인의 입맛에 완전히 새로운 술이라는 것. 그는 “새로운 술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고, 위생과 청결까지 믿을 수 있다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본에서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국내 업체끼리 가격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초가는 단 한 번도 가격을 내리지 않고 ‘고급화 전략’을 유지했다. 올해 1월에만 1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등 고급 막걸리를 찾는 일본인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 일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막걸리화’

2006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교육기관인 영국 ‘WSET’에서 3년 동안 공부하고 국제 소믈리에 자격증 두 개를 갖고 있는 안승배 씨(33)를 연구실장으로 영입했다. 안 실장은 “와인 공부를 하다 보니 와인에 대한 유럽인들의 자신감이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났다”며 “우리 막걸리도 와인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안 실장이 합류하면서 새 제품 개발에 불이 붙었고 그 결과 올해 ‘검은콩 막걸리’ ‘마카 막걸리’ ‘울금 막걸리’ 등 신제품 3개를 선보였다. 마카는 안데스산맥 고지대에 서식하는 식물로 ‘안데스의 인삼’이라 불린다. 울금은 생강과의 식물로 피부암이나 대장암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실장은 “마카나 울금 모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천연 재료”라며 “이것들을 막걸리에 넣었더니 일본 현지의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이 이사는 “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기본을 유지하면서 얼마든지 현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라며 “지속적인 연구개발(R&D)이 이뤄진다면 조만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우아하게 막걸리를 마시는 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 대통령과 막걸리
김정일도 궁금해한 ‘박정희 막걸리’ 비결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겨 마셨던 ‘배다리막걸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랑한 ‘오곡막걸리’, 이명박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주로 사용했던 ‘자색고구마막걸리’…. 막걸리는 대통령들과 얽힌 일화도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오른쪽)이 논두렁에 앉아 시골 촌로에게 막걸리를 따라주고 있다. 최근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전현직 대통령들과 막걸리에 얽힌 일화도 관심을 끌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오른쪽)이 논두렁에 앉아 시골 촌로에게 막걸리를 따라주고 있다. 최근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전현직 대통령들과 막걸리에 얽힌 일화도 관심을 끌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박 전 대통령은 1966년부터 배다리막걸리 마니아가 됐다. 당시 배다리막걸리 사장이었던 박관원 씨(78)는 “박 전 대통령은 늘 배다리막걸리 맛이 최고라며 수시로 가져다 마셨다”고 말했다. 그는 44년 만에 털어놓는 비화라면서 “그런데 당시 대통령이 마셨던 배다리막걸리는 요즘 말로 ‘최강 프리미엄급’이었기 때문에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쌀로 술을 빚는 일이 불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었는데 박 전 대통령이 마시는 술만큼은 별도의 밀실에서 최고급 쌀로 만들었다는 것. 그는 “청와대 검식관은 한번 맛을 보고 이 사실을 알았지만 우리를 처벌하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13년 동안 청와대에 막걸리를 공급하면서 똑같은 맛을 유지하기 위해 오직 한 사람이 대통령의 막걸리를 전담해 제조했다는 말도 했다.

박 씨는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배다리막걸리를 마셨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2000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면담을 앞둔 시점에 김 국방위원장이 박 전 대통령이 마시던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고 요청해 현대 측에서 직접 양조장에 와서 술을 받아갔다는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5월 충북 단양군 가곡면 한드미 마을을 방문했을 때 앉은 자리에서 대강양조장이 만든 오곡막걸리를 여섯 잔 연거푸 들이켠 일화로 유명하다. 권양숙 여사도 같은 자리에서 넉 잔을 마셨다. 오곡막걸리는 청와대 만찬주로도 선정됐는데 노 대통령이 직접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재구 대강양조장 사장은 “청와대 납품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1년이 넘도록 비밀로 했다”며 “자칫 잘못했다가는 대통령에게 누를 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사랑’에 힘입어 대강양조장은 현재 연평균 3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수출을 생각하는 막걸리 업체들 사이에서 ‘은인’으로 불린다. 노 전 대통령이 국내에서 막걸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면 이 대통령은 전 세계적인 막걸리의 도약을 이끌고 있기 때문. 이 대통령은 2009년 10월 9일 한일 정상회담 때 ‘배혜정 누룩도가’가 만든 ‘자색고구마막걸리’를 건배주로 사용했다. 또 지난달 28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한국의 날’ 만찬 건배주로 ‘국순당’의 ‘미몽’을 사용했다.

이 대통령은 행사 때마다 다른 막걸리를 사용한다. 10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2010 재외공관장회의’ 때는 2010년 경인년을 맞아 특별 한정 판매하는 배혜정 누룩도가의 ‘호랑이막걸리’를 이용했다. 이날 모임에는 700mL들이 130병이 공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취재팀>
▽팀장 홍석민 산업부 차장

▽산업부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전통방식으로 빚는 막걸리 제조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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