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퇴직금 중간정산 방조하는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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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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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한 가지!

만약 당신에게 다음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즉, 지금 당장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100만 원짜리 전표를 받겠는가, 아니면 3년 뒤에 현금과 교환할 수 있는 200만 원짜리 전표를 받겠는가. 아마도 10명 중 7, 8명은 지금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전표를 택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이는 행동주의 경제학에서 현재를 미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의 성향을 설명할 때 드는 중요한 사례의 하나다. 주식시장에서도 개인투자자들이 금세 결과가 나오는 방식을 훨씬 더 선호한다는 점을 거론할 때 이런 예시를 활용한다.

은퇴 후 중요한 생계수단으로 꼽히는 퇴직금을 바라보는 직장인들의 심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멀리 있다고 여기는 ‘불안한 노후’를 생각하기보다 ‘당장의 소비’를 더 아쉬워한다. 그러다 보니 미래를 위한 대비에는 좀처럼 착수하지 못한다. 퇴직금 중간정산을 ‘저질러 버리는’ 직장인들의 셈법도 마찬가지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기업의 퇴직금 담당자 700명에게 물었더니 60.8%가 중산정산을 실시했노라고 답했다. 직장인들의 잦은 중간정산은 ‘농사꾼은 굶어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는 속담처럼 끝까지 내일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농부와는 정반대의 행태인 셈이다. 그런데 서둘러 퇴직금 중간정산을 하라고 분위기를 만드는 세력이 있다면?

정부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전면개정안을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했다. 기존 법률을 대폭 보완해 직장인들이 노후생활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사실상 모든 기업이 퇴직연금제도를 채택해야 하고 직장인들이 확정급여(DB)형과 확정기여(DC)형을 동시에 가입할 수 있게 하며 여러 기업이 연합해 하나의 퇴직연금에 들 수 있도록 한 것 등이 주요 개선항목이다. 그러나 시행시기를 올해 7월 1일로 정한 개정안은 아직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를 통과하기에는 시한을 넘겼고 자칫 내년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중간정산 방조론’은 바로 국회가 개정안 처리를 미루면서 나오는 지적이다. 개정안은 퇴직금을 허투루 써서 없애지 못하도록 중간정산 요건을 엄격하게 정해놓았다. 이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중간정산을 하려는 직장인들의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중간정산을 하는 직장인들이 주로 중소규모 이하 기업에서 일한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힘겹게 헤쳐 나가다 보니 ‘노후는 그때 가서 보자’며 내리는 선택으로 볼 수 있다.

현재 금융회사들은 개정안이 사실상 새 법이라고 할 만큼 크게 바뀌기 때문에 관련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적립금 규모가 1조 원을 넘을 것으로 보이는 삼성전자가 드디어 퇴직연금을 도입하고 2020년에는 전체 적립금이 149조 원으로 커진다는 이 시장에서 우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퇴직연금 도입과 운용을 쉽게 하도록 소득세와 법인세 등 세제 지원과 자산운용 규제완화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물밑 움직임을 공식화해야 할 국회는 뒷짐을 지고 있다. 올 한 해가 가기 전에 꼭 마무리해야 할 대사(大事)인데도 말이다.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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