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현대차, 日시장 권토중래 꿈꾸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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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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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198번째 자동차시장을 뚫어라.’ 현대자동차가 2000년 일본 판매법인을 만들면서 내건 슬로건이다. 현대차는 당시 일본을 제외한 197개국에 연간 160만 대를 수출하며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던 때였다. 현대차는 같은 해 12월 23일 일본 수출용 차량 92대를 처음 선적했지만 주변에선 우려의 시각이 많았다. 막상 9년 만에 그 우려가 현실화하자 ‘왜 도요타처럼 꼼꼼하게 준비를 하지 않았냐’, ‘괜한 모험으로 한국 차의 이미지만 떨어뜨렸다’며 현대차를 힐책하는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사실 현대차의 일본 진출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현대차가 일본시장 진출을 결정한 것은 일본 제품의 국내 진출을 막아왔던 대일 수입처 다변화 정책이 1999년 7월 해제되면서 도요타의 렉서스 브랜드가 2001년 1월 한국에 진출하기로 했던 데 대한 맞대응의 성격이 강했다. 당시 정부의 은근한 권유도 있었다고 한다. 비교적 갑작스레 결정된 일이고 고위 경영진으로부터 ‘돌격 앞으로’ 명령이 떨어졌으니 시장조사는 아전인수 격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70만 명에 이르는 재일교포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줄 것이라는 기대만 봐도 그렇다. 자동차는 주택 다음으로 비싼 상품이어서 애국심에 기대를 걸기는 무리다.

당시 현대차는 일본시장에 맞는 경차 아토스는 2002년 단종시킬 예정이었고 소형차를 수출해야겠지만 ‘소형차 왕국’인 일본에 내놓을 만한 경쟁력 있는 모델이 없었다. 결국 브랜드 이미지를 높인다는 이유로 배기량 3.0L ‘그랜저XG’가 주력이 됐다. 일본 소비자의 처지에선 인지도가 낮은 데다 가격이 그렇게 싸지도 않고 애프터서비스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현대차를 구입할 이유가 없었다. 현대차의 실패는 일본 진출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미국시장도 처음엔 실패의 우려가 높았다. 현대차는 1986년 미국에 ‘엑셀’을 처음 수출했는데 초기에는 싼값으로 인기를 얻어 잘 팔렸지만 곧 품질 문제로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미국에서 현대차가 ‘싸지만 품질이 형편없는 차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2002년부터 ‘품질경영’에 다걸기한 덕분에 올해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시장점유율을 올릴 수 있었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애니콜’도 과거 품질과 디자인 문제로 국내시장에서조차 모토로라에 크게 밀렸지만 1995년 이건희 전 회장의 지시로 ‘애니콜 화형식’을 한 뒤 급성장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대표적 사례들이다. 그래서 좌절하긴 이르다고 현대차 관계자들을 격려해주고 싶다. 그 대신 언젠가 다시 일본시장을 공략하려면 절치부심하며 철수 이후를 깊게 고민해야 한다.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고 감동마저 준다면 훗날 일본 소비자들도 한국차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현대차를 선택한 1만5000여 명의 일본 고객에게 철저한 애프터서비스로 강한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손실이 크더라도 부품을 신속하게 공급하고 한국에서 기술자들을 출장 보내서라도 일본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차량을 점검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큰 손실을 보게 된 일본의 37개 딜러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이익 때문에 그들에게 불만을 남긴다면 다시 일본에 진출할 때 족쇄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의 이번 일본시장 철수는 성공한 실패일 수도 있다. 성공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석동빈 산업부 차장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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